['대선자금 고해성사' 왜 나왔나] 盧 의표 찌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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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정국 양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묘수를 찾고 있다. SK 비자금 사건이 묘수 찾기의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대로 놔둔다면 사건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야당으로서도 절박한 지경에 이른 게 사실이다.

盧대통령은 때문에 먼저 정치자금의 자진공개를 정치권에 제의할 생각이다. 오는 주말의 4당 대표 연쇄회담에서다. 盧대통령 자신이 23일 싱가포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 같은 계획을 시사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이를 확인했다. 물론 정치자금의 자진공개가 새로운 제안은 아니다.

지난 7월에 제기한 이후 잊을 만하면 한번씩 던진 화두다. 그러나 야당이 냉담한 반응을 보여 자진공개는 물건너가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자진공개를 안 하면 검찰이 다 찾아낼 분위기라는 것이다. SK 문제뿐 아니라 다른 기업에까지 문제가 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자진공개는 사면을 전제로 한다. 다만 알선수재나 뇌물 혐의가 있는 돈까지 봐주자는 것은 아니다. 정치자금법 위반 사항에 국한하자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여론의 저항도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盧대통령의 이 같은 판단에는 야당 내의 복잡한 역학구도도 고려의 대상이 된 듯하다. 어찌됐든 그 같은 제의를 야당이 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盧대통령은 거기에 재신임 문제를 얹힐 방안까지 고려하는 듯하다. 재신임 국민투표를 정치권이 명백히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 문제까지 차제에 정리하겠다는 구상인 것 같다.

그 때문에 재신임 국민투표가 위헌이라면 정책을 걸고 법대로 하자는 것이고 그 정책을 불법 정치자금의 자진공개분에 대한 사면 여부로 묻자는 논리다. 재신임과 정치개혁특별법을 연계한다는 얘기다. 몰론 논리적 비약이나 법률적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당을 압박함으로써 최소한 정치자금의 자진공개는 관철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듯하다.

유인태 정무수석은 "정치권이 끝내 합의하지 않으면 정책을 연계한 투표는 위헌이 아니라고 보는 편이므로 정치권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고려에는 당장 현실적으로 盧대통령 스스로가 순수 재신임 투표만을 고집할 수 없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이날 盧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있은 기자간담회에서 재신임 투표 시기를 12월 15일 이후로 연기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대선자금과 재신임 투표가 함께 불거진 변경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강민석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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