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의 만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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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몬」으로 시작되는 모윤숙의 산문시 『렌의 애가』 초판은 1939년 39페이지의 얄팍한 팸플릿같은 책자로 선보였다.
그 시집이 나오자 당시 전국의 젊은 문학지망생들은 밤을 지새며 집독을 했고 출판사는 재판을 찍어내기 바빴다.
『렌의 애가』는 판을 거듭할수록 독자가 불어났고 페이지수도 늘어났다.
그리고 그 중판은 초판이 간행된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현재 60여판을 기록하고 있다.
「렌」은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사는 작은새로 일생동안 혼자 슬피 울다가 외롭게 죽어간다고 한다.
모윤숙이 스스로 「렌」을 자처하며 그토록 애절하게 부른 「시몬」은 누구인가.
물론 시편속의 「시몬」은 한 시인이 추구하는 영원한 연인,이데아의 모습이다. 그러나 문단이면사에서는 「시몬」을 춘원 이광수라고 하는 데 별다른 이의가 없다.
모윤숙이 춘원을 처음 만난 것은 소녀시절 한의사였던 그녀의 할아버지 사랑채에서 였다. 한창 문단에 이름을 떨치고 있던 춘원은 이 사랑채에 이따금씩 놀러와 글을 쓰곤 했다.
모윤숙이 이전을 졸업하고 간도 용정의 명신여학교에 교편을 잡고 있을 무렵 「동광」 잡지발행인 주요한씨로부터 원고청탁을 받고 시 한편을 보냈다.
『임계신곳 향하여/이 몸이 갑니다./검은머리 풀어 허리에 매고/불꺼진 조선의 제단에/횃불 켜 놓으려 달려갑니다….』 이것이 그녀의 데뷔작 『검은 머리 풀어』의 한 구절이다.
춘원이 이 시를 읽고 칭찬을 했다. 모윤숙은 더욱 열심히 시를 썼다.
어느핸가 춘원과 모윤숙은 부전고원을 여행했다. 그 여행중 산봉우리에 높게 걸린 구름을 보고 춘원은 모윤숙에게 「영운」이란 아호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모윤숙이 우리 문학사와 외교사에 끼친 업적은 눈부시다. 매논을 부추겨 유엔에서 한국 정부수립을 승인받게 했는가 하면 「문예」지를 창간,광복후의 문단에 큰 기여를 했다. 또 펜클럽을 만들어 우리문학의 해외진출에 눈을 뜨게도 했다.
그러나 시인 모윤숙을 우리 모두가 잊지 못하는 것은 그녀의 애국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아직도 우리의 피를 끓게 한다는 데 있다. 그녀가 바로 6·25를 맞는 6월의 현충일 다음날에 눈을 감은 것도 우연이 아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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