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흥분말고 냉정하자”/한남규특파원이 본 한소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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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줄건 주고 받을건 꼭 챙겨야
45년 10월14일 평양의 소련군사령부는 군중대회에 「애국적 영웅」 김일성을 등장시켰다. 사흘후 10월17일 서울의 미군사령관 존 하지장군은 또 한 사람의 애국자 이승만을 소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반도야말로 미소를 각기정점으로 하는 동서냉전의 대표적 희생이었음을 나타내는 비극적 역사의 단편이다.
반세기가 흐른 오늘 유엔 출범의 도시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냉전희생자측의 노태우대통령과 글라스노스트(개방)ㆍ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표방하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마주 앉았다. 회담후 기자회견에서 노대통령은 두사람이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표현대로 『매우 획기적인 일』이며 역사의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은 개방과 화해의 물결이 이제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미쳐야한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고 노대통령은 밝혔다. 한반도의 강점을 위한 노일전쟁등 한세기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소간의 불행한 과거를 돌이켜볼때 이회담의 역사성과 의의는 지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흥분될 때일수록 냉정이 요구된다. 소련의 회담동기는 무엇인가,샌프란시스코회담은 냉전의 마지막 유산,한반도분단상황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흥분한 나머지 주고받을 것을 고르게 챙기지 못하는 대목은 없는가,냉철하게 자세를 가다듬어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적지않다.
본래 소련이 한반도에 대해 고수해온 전략적 고려는 그들의 한반도접경 이남을 잠재적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을 바탕으로 해왔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소련은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필요로 한다.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고도산업성장과 충실한 준비를 갖춘 6천만 인구의 당당한 통일한국이 현재의 북한처럼 소련에 매달리는 동맹으로 남겠는가.
한반도통일문제에 관해 미온적이었던게 지금까지의 소련이다. 중국과 달리 소련은 북한을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선언한 일이 없다. 「양쪽 한국」 「한국의 모든 부분」 등의 호칭사용으로 분단현상인정 자세를 일관했다. 다만 양쪽이 군사적으로 팽팽히 대치하는 것보다는 평화적 공존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해 남북한 대화유도를 위해 미국과 협력해 왔다.
경제적인 면에서 볼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소련에는 득보다는 짐이었다. 북한은 경제문제에 관해 소련과 이견을 갖고 출발했다. 그래서 소련이 주도하는 국제경제기구,상호경제지원회의(CMEA) 등의 가입을 거부했다. 모스크바의 대북한 무역거래도 소전체 교역의 1% 정도가 고작이었다. 오히려 소련은 북한의 외채상환불능으로 부담만 늘었다.
반면 북한에 대한 전략적 고려만을 제외한다면 한국은 모스크바에 점점 새롭고 중요한 의미를 확대해가고 있다. 고도의 산업화,국제사회에서의 비중ㆍ역할증대 등 한국은 소련이 우회해서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가 돼왔다. 소련문제전문가인 미듀크대의 제리 하우프교수는 모스크바는 한국을 그들의 경제발전 모델케이스로 존경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다시말해 샌프란시스코회담은 한국이 커진데 따른 당당한 귀결이다. 회담 실현의 가장 강력한 동기와 배경은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에 앞서 한국민의 피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울의 북방정책은 일반통행이었다. 오랫동안 소련은 한국정부의 관계개선 의사표명에도 불구하고 대응이 없었다.
소련은 처음으로 73년 한국기업인을 레닌그라드에 받아들일때 관광단에 끼어 조용히 입국시켰다. 다음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한국대표단이 참가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소련의 대한접촉이 다소 넓어졌으나 계속 대외노출을 꺼렸다. 이같은 한국쪽의 일방통행은 82년 소 타스통신기자 3명이 서울에서 열린 국제언론 관계회의에 참석하기전까지 계속됐다.
그후 소련은 그들의 최고회의 의원들을 서울에서 열릴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에 참석시키기로 결정함으로써 쌍방통행의 길이 확대될 듯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83년 9월 KAL기를 격추,무고한 민간인 2백69명을 전멸시키고도 사과ㆍ보상은 커녕 책임인정까지 거부해 오늘까지 이른 것이다.
사건발생 불과 수개월후 한국정부는 북방정책의 지속을 선언함으로써 일방통행자세를 재확인했고 이번 미소정상회담을 위해 고르바초프가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박동진 주미대사는 『국가간의 다른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불행한 문제는 덮어둘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모두 획기적 역사의 변전에 직면해 한국이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노출시키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 정상회담의 뒷전에 황망히 이루어진 회담추진경위,회담성사의 공들을 다투는 모습,불과 수주일전 국내정치상황을 이유로 취소했던 워싱턴행의 추진 등은 냉정을 되찾은후 다시한번 돌이켜봐야할 사안들인 것 같다.
소련은 회담을 계기로 적지않은 규모의 「경협」과 통상확대,그리고 대아시아­태평양진출확대 등 소득이 예상된다. 한국이 속만 드러내고 내주기만 하는 「획기적 전기」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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