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악수”… 세계평화 기반구축/부시­고르바초프회담 무엇을 남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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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역협정 서명… 「경제냉전」청산/통독등 신국제질서 정지 미흡
워싱턴 미소정상회담은 냉전시대로부터의 현안은 해결했으나 냉전종식 이후를 맞이하는 과제는 계속 미결로 남겼다.
3일 공동기자회견으로 회담을 종결한 부시 미국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전략핵ㆍ화학무기 등을 대폭 삭감하는 무기통제협상은 비교적 큰 성과를 거뒀으나 독일통일 이후의 장래 유럽안보등 신국제질서문제에 관한 이견은 끝내 좁히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과거 50년에 걸친 「경제적 냉전」의 청산을 의미하는 무역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미소관계에 있어서는 대결로부터 협력으로의 전환을 실증하고 새로운 국제관계에는 낙관적분위기를 예고했다. 특히 양국수뇌가 매년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해 이번에 종결하지 못한 현안들에 대한 계속협상의 길을 터놓았다.
가장 확실한 회담성과로 양측이 앞세우는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에 관한 부시­고르바초프 공동성명은 8년간의 협상내용을 확정짓고 연내 공식조약서명을 가능케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7년내 양측이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 핵무기를 일부는 50%,어떤 부분은 30% 감축하게 됐다.
87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미소가 최초의 장거리 전략핵 삭감에 합의한 것은 강대국 군축역사의 의미와 아울러 국제관계의 평화기반을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미소의 기존화학무기를 대폭 폐기하고 더이상 독가스를 생산하지 않기로하는 화학무기폐기협정은 특히 부시쪽의 업적으로 미측에 의해 부각되고 있다.
작년 9월 유엔에서 부시가 제의한데 따라 진척이 이루어진 이번 협정은 우선 2만5천t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5만t을 갖고 있는 소련이 각각 5천t씩 폐기,종국적으로는 현수준의 2%만을 남겨놓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무기통제에 관한 이번 회담의 진전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이 많다.
우선 행정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다. 실제로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회의등이다. 핵탄두의 숫자를 운반수단별로 계산하는 등 복잡성으로 인해 이론적으로는 협정체결후에도 전략핵탄두는 동일수준이 될 것이며 특히 생산기술의 지속적 개발로 인해 실제 삭감효과는 별것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화학무기협정도 문제점을 안고있기는 마찬가지다. 흔히 「가난한 자의 핵폭탄」으로도 불려지는 화학무기는 생산비가 저렴하여 중동국가등에 확산되고 있다. 범세계적인 감축노력을 촉진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히 강한 이번 화학무기협정은 제3세계의 호응이 어느정도 적극적일지 의심스럽다.
무기감축협정의 역사적 의미도 작지는 않지만 더 큰 관심은 무기협상 테이블보다는 독일통일문제와 리투아니아독립 등 신국제질서쪽이다.
워싱턴 정상회담이 진전을 이루지 못한 이들 문제들을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실질적 미합의」라고 표현했다.
국제사회의 「실질적 초점」인 유럽안보의 장래 및 독일 통일문제에 관해 회담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양측이 상호 입장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협하는 움직임을 보인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은 통일될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회원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동ㆍ서구국가를 망라하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강화,유럽분쟁해결을 위한 유엔형의 안보책임을 이 기구에 부여할 용의를 비쳤다.
아울러 독일통일이 소련안보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모스크바의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해 미국은 전독군사 규모 제한방안도 제시했다.
독일문제는 이같은 다양한 구상들을 토대로 미ㆍ소ㆍ독 등 관계국외무장관회담들의 계속적 협상을 거치면서 의견접근에 장시간이 소요될 것임을 위싱턴회담이 예고한 셈이다.
회담전까지만해도 소련이 리투아니아탄압을 개선하지 않는한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부시는 실제로는 리투아니아문제를 제쳐놓고 고르바초프에게 경제적 지원의 손길을 건네주었다.
이번 고르바초프의 방미성과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역협정체결이라는 것이 현지 분석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협정체결이 어려운 것으로 봤으나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미국의 최대곡물수입국이라는 카드를 사용,협정체결에 성공했다.
무역협정체결이 소련에 당장성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미국이 소련의 서방경제 참여를 공식인정하는 것으로 소련이 절실히 원하고 있는 가트(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IMF(국제통화은행) 세계은행 가입에 대한 미국의 보증서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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