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중대한 개방압력”/한소 정상회담을 보는 외국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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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본사 4개국 특파원 현지표정 긴급 취재/아시아에 「신국면」이룩… 냉전종식/너무 빠른 속도에 놀라움과 충격
한소정상회담은 동북아 정세에 역사적 신국면을 마련하는것이며 소련은 북한의 기존 한반도 통일방안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고 외국언론ㆍ지식인들이 평가했다. 이들 외국언론ㆍ지식인들은 이번 한소정상회담이 소련의 대한수교필요성을 확인시킨것이며 소련의 경제적 요인이 큰 이유가 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국익을 앞세운 소련의 대한관계정상화 움직임은 북한을 고립화시키고 나아가 미ㆍ소ㆍ중ㆍ일을 비롯,남북한의 새로운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한소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세계의 반응과 평가 및 전망을 요약한다.【편집자주】
○미국 한남규 워싱턴특파원
미국 정부는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회담을 갖는데 대해 공개적으로도 환영을 표명했지만 내심으로도 매우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무부는 30일 회담개최의 경우 환영할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31일 다시 공식논평을 통해 『매우 기쁘다』고 만족을 표명했다.
미국정부는 한소정상회담 개최계획을 한국측으로부터 1주일전에 통고받았다고 한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한국측이 한소정상회담을 위해 노력을 벌여온 것이 미정부에는 「공개된 비밀」이었다』고 전한 이 소식통은 그같은 노력이 결실을 보게된데 대해 처음부터 「잘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미언론도 놀라움과 함께 긍정적 평가를 나타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는 『극동에서 일고있는 급격한 변화를 극적으로 나타낸 전례없는 비상한 일』이라고 표현하고 『고르바초프가 회담장소를 샌프란시스코로 정한것은 노대통령을 서울에 가서 만날 수 있을 정도로까지는 한소관계가 진전돼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지는 대외개방을 지체해온 북한 김일성에 대한 소련의 「외교적 모욕」이라고 규정했다. 이 신문은 미정부로서는 고르바초프의 워싱턴이후 스케줄에대해 발언권이 없었지만 다행히 고르바초프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대통령을 만나기로 결정한데 대해 미관리들은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번 회담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지지해온 국가들에 대한 관계개선을 추진해온 노대통령 정책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한편 한반도문제에 관한 학계 전문가들은 고르바초프의 한소정상회담 결정동기를 자본ㆍ기술ㆍ노동력 등 한국의 경제적 도움을 구하기위한 경제적 배려에서 찾고있다.
○일본 방인철 동경특파원
일본외교가는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전격회담사실을 「충격」과 「경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외무성은 1일 서둘러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할것』이라고 환영하는 한편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더욱 적극화하겠다』고 공식표명,신속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은 한소수뇌회담이 이처럼 빨리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표정이다.
일본의 한 소식통은 이번 노­고회담에서 소련이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일원」임을 공식선언 한다는데 큰 의미를 두어야한다고 말하고 이에따라 한ㆍ소ㆍ중국ㆍ일본이라는 새로운 4각균형상태가 이루어질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언론들은 노­고회담이 아시아 지역에 몰아올 새로운 파장을 점치기에 바빴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번 한소수뇌회담은 양국국교수립을 향한 움직임을 가속시키고 아시아정세전반에 「역사적 신국면」을 만들 것』으로 평가했다.
도쿄(동경)신문은 해설기사에서 노­고르바초프회담이 이루어진 배경으로 ①대사회주의권(북방)외교에서 동구제국과의 국교수립이 대략 끝나 「총정리」전인 의미로도 대소수교가 급무였다 ②남북한대화가 중단되고있다 ③미수교상태에서 소련이 요구하고있는 한국기업의 대소련투자가 진전이 어렵다는 점등을 고려했다고 분석했다.
이신문은 이번회담의 목적으로 한국은 소련에 대해 북한에 개방압력을 가하는 한편 북한이 건설중인 것으로 알려진 원자력관계시설의 사찰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요청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경제의 확대를 카드로 일본의 대소련투자를 유도하려는 속셈도 소련측에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내 조총련은 큰 충격을 받고있음을 나타냈다.
조총련상공회부회장 김용배씨는 『같은 사회주의 형제국이던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우리의 의사를 듣지않고 국익을 우선시켜 분개를 금할 수 없다』고 답변,북한이 느낄 수 있는 고립감을 우려했다.
게이오(경응)대 오코노기(소차목정부) 교수는 한소정상회담결정을 전해듣고 『소련이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면 아시아에서도 냉전은 끝나고있다는 인상을 주어 그 파급효과는 크다.
소련이 사실상 「두개의 한국」을 인정한 것으로 북한에 있어서는 연방제에 의한 남북통일구상이 부정된 것으로 타격이 크다』고 분석,앞으로 북한ㆍ소련ㆍ한국사이의 관계가 긴장될 것으로 예상했다.
○프랑스 배명복 파리특파원
한소간 정상회담 소식은 파리에서도 매우 중대하고 뜻깊은 사태발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의 극동문제전문가들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며 한결같이 놀라움을 표시하고 그동안 한국의 북방외교를 관심있게 지켜보아온 프랑스로서도 이번 한소정상회담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외무부의 필립 봐시한국담당책임자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이 사실을 접했다』면서 『이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전체로서 매우 중요한 사태발전』이라고 평했다.
르 피가로지의 아시아경제담당해설위원으로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자문역을 겸하고 있는 알랭 베르네씨는 그동안 비공식적 차원에 머물러온 한소간 경제협력이 이를 계기로 본격화되는것은 물론이고 한국을 발판으로 한 소련의 대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베르네씨는 이번 조치를 북한의 입장에서는 중대한 개방압력으로 풀이하고 『이번 한소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서 남북간의 급속한 관계발전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파리1대학의 미셸 르사즈교수(소련정치제도론)는 『소련 전문학자로서 이번 한소 정상회담 소식은 매우 흥미로운 뉴스』라고 전제하고 『이번 정상회담은 이른바 고르바초프식 「신사고」외교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관계가 일정 수준에 달하면 정치관계의 성립없이는 더이상 진전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하고 『대한수교방침을 통해 소련은 경제라는 실리를 위해서는 정치의 수단화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곳 분석가들은 소련으로서 이번 수교조치가 대외정책상의 큰 변화를 의미하는것은 아니며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일관되게 추진해온 대외개방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전택원 홍콩특파원
중국은 1일 현재까지 한소정상회담에 관해 일체의 보도를 하지않는등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매우 신중한 관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홍콩의 언론들도 외신을 전재,사실보도만 하고있을뿐 이에관한 논평이나 분석기사는 다루지 않고있다.
그러나 친중국계인 홍콩의 대공보가 1일 「노태우대통령 미국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난다」는 제하의 해설기사를 통해 『노­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이 만약 실현된다면 이는 「남조선」역사상 대소외교활동에 있어 획기적인 일이 될것』이라며 『나아가 「남조선」의 국제적 지위 및 노대통령 개인의 성가를 드높이는 일이 될것』이라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이어 노대통령의 북방외교정책은 소련과의 국교수립 및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꾀하려는 것이라고 전제,고르바초프와의 회담이 실현된다면 새로운 외교의 결실을 보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와 함께 양국 정상회담이후 미ㆍ일ㆍ소등이 남북한간의 대화통로 개설에 나설것으로 전망했다.
대공보는 또 지난번 북한이 한국전당시 실종됐던 미군5명의 유해를 미국측에 인도한것은 북한의 대미관계개선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하고 한소간의 관계개선과 함께 북한­미국간의 관계개선도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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