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뻥 뚫린' 천안문 공중화장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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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일 오전 베이징(北京) 천안문(天安門) 광장 동쪽 여성용 공중 화장실 앞. 용변을 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서 있었다. 홍콩에서 온 중년 여성 관광객 팡(龐)은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장실에 칸막이 벽은 물론 출입문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란히 쭈그려 앉아 용변을 보고 있었다. 더욱 난감한 것은 그 바로 앞에 사람들이 죽 늘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용변 보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 모두 민망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내돌리고 있었다.

팡은 망설였다. 그러나 사정은 다급했다. 순간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양산이 생각났다. 자기 차례가 되자 그는 얼른 쭈그리고 앉아 양산을 앞쪽으로 펼쳐 들었다. 옆에서 일 보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만은 가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옆 자리의 여인이 신문지를 펼쳐 들었다. 그러곤 얼른 자기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주변 사람이 모두 신문이나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온 여성 관광객 제니는 끝내 화장실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는 화장실 풍경을 취재하던 한 중국 기자에게 "천안문은 세계적인 관광지인데 근처 공중화장실에 문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인근 베이징 호텔까지 가서 일을 봐야겠다"고 말했다.

사실 베이징뿐 아니라 중국 대부분의 공중 화장실은 '완전 개방식'이다. 높이 1m 정도의 칸막이만 있는 곳도 많다. 그래도 중국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일을 본다. 외국인이 기겁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베이징의 공중 화장실은 최근 몇 년 전부터 하나 둘씩 문을 달고 있다. 외국 관광객에 대한 배려다. '개인적인 일'을 공개하기 싫어하는 시민도 늘어났다. 그런데 왜 대표적 관광지인 천안문 광장 주변 화장실에 문이 없는 걸까.

화장실 관리인은 "국경절 1주일 연휴를 맞아 천안문 광장 주변 5개 공중 화장실의 내부 문을 모두 떼어냈다"고 말했다. 이유는 뭘까. 이 관리인은 "문이 달려 있으면 사람들이 꾸물대고 잘 나오지 않는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화장실 문을 발로 차는 바람에 화장실 문이 파손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사람들의 화장실 이용 시간을 줄이고,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문을 떼어냈다는 얘기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화장실 이용 속도를 빠르게 하려고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민망하게 만들었다니 2년 뒤 올림픽을 치를 도시에서 어떻게 그런 발상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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