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 자리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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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총장(Secretary of General)의 영어 약칭은 'SG'다. 공교롭게도 희생양(scapegoat)의 약칭과 같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다 보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희생양'이 되기 쉽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역대 사무총장 배출국을 보면 국제무대에서 특별한 영향력을 갖지 못한 나라가 대부분이었다. 강대국인 5개 상임이사국이 서로 견제할 필요가 없는 그런 나라 출신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무색무취거나 국제분쟁에 연루되지 않아야 국제외교의 사령탑으로 중립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도 봤다. 이런 점에서 미국.중국 등 강대국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분단국에서 사무총장이 나오게 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유엔이 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어가는 데 있어 반 장관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 국가원수급 예우=유엔 사무총장은 뉴욕 유엔본부 사무국(Secretariat)의 수장인 동시에 세계 최고의 외교관으로 국제사회에서 국가원수 내지 행정부 수반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 대단한 자리다. 그래서 별도의 보안 검색없이 각국의 공항을 드나들며 외국을 방문할 수 있다. 외교관 이상의 면책특권을 부여받는 셈이다.

총회가 정한 규칙에 따라 1만6000명(지난해 6월 기준)의 사무국 직원을 임명할 수 있는 막강한 인사권을 지니고 있다. 산하기관까지 포함하면 모두 4만 명에 대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사무총장 권한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유엔 내 모든 기관과 협의하며 권고할 수 있는 권한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분쟁 예방을 위해 조정과 중재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무총장의 기본 연봉은 1997년 이래 22만7253달러(약 2억1500만원)로 고정돼 있다. 반기문 장관이 현재 받고 있는 연봉(8810만원)의 두 배가 넘는 다. 총장은 뉴욕 맨해튼 동부의 이스트강이 내려다 보이는 관저를 1년에 1달러(약 950원)만 내고 거주할 수 있다. 이 관사는 미국 유엔협회가 사실상 무료 제공하는 것이다.

◆ 과거 총장은=유엔 사무총장의 임기는 5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역대 총장 중 6대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총장만 재선에 실패했으며 3선 이상 한 총장은 없다. 이런 점에서 사실상 임기가 10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동안 초대 총장인 트뤼그베 할브단리(노르웨이 외무장관)와 부트로스갈리(이집트 외무부총리)만이 선출 당시 현직 장관급 거물 인사였을 정도로 보통 중견급 직업외교관이 맡아 왔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 현 총장도 선출 당시 직위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담당 사무차장(USG)으로 유엔 사무국 내에서도 그리 높지 않은 서열이었다. 유엔 사무국 조직상 사무총장 아래에 사무부총장(DSG)이 있으며 그 밑에 12명의 사무차장(9월 현재)이 일하고 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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