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2) 늘푸른 소나무 - 제3부 범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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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원일 최연석 화
화물자동차 한 대가 교무과 앞마당으로 꽁무니에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들어왔다. 털털거리며 들어온 그 자동차가 자신을 실어 나를 차임을 수인들은 알아차렸다.
인솔대원 세 명이 수인 두명씩을 한 조로 하여 한쪽 손목을 모아 수갑을 채웠다. 석주율과 함께 수갑을 찬 자는 학생복을 입은 애젊은이였다. 수인들은 곧 묶이지 않은 한쪽 손에 사물 꾸러미를 들고 조별로 화물차에 올랐다. 마흔 명이 다 타게 되자 화물차 뒤칸은 서로 어깨를 붙이고 무릎 세워 쪼그려 앉아야 할 만큼 비좁았다. 인솔대원 셋도 뒤칸에 올랐다.
『자동차를 다 타보구, 이게 영광인데.』
떠꺼머리 수인이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너 일어 서!』
인솔대원 하나가 그 수인을 지목하였다. 왼쪽 귀에서 목까지 칼자국 흉터가 길게 나있는 자였다.
『저, 저말입니까? 』
말을 뱉은 수인이 겁먹은 표정으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자, 수갑을 같이 찬 옆 수인도 따라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십장님이 사담을 말랬잖아. 』
허리에서 채찍을 뽑아 든 인솔자가 그 채찍을 머리위로 들어 바람 소리도 날카롭게 휘둘렀다. 삼 미터 정도의 거리인데 채찍 끝은 정확하게 떠꺼머리 수인의 얼굴을 내리쳤다. 아이쿠, 하며 수인이 한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 위로 다시 한번 채찍이 떨어졌다. 손목과 손등으로 금세 지렁이가 앉은 듯 붉은 줄이 그어졌다.
『앞으로 꼭 묻고 싶은 말은 임시 조장을 통해 질문하도록. 』
인솔자가 줄을 접어 채찍을 허리에 찼다. 채찍을 맞은 자가 제 자리에 앉으며 얼굴을 가렸던 손을 거두자 안면 역시 붉은 선이 사선을 긋고 있었다. 그 꼴을 본 수인들은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으니, 시작이 이렇다면 앞으로의 장기 외역이 지옥살이와 다름이 없겠거니 여겨진 탓이었다. 모두 올가망한 얼굴로 구름이 켜켜이 낀 낮은 하늘만 바라보았다. 서쪽 하늘 저 멀리, 낙동강 하구 쪽에서 물떼새 무리가 검정깨를 뿌린 듯 날고 있었다.
『삼조 조장,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오? 그걸 물어주시오.』
그 스산한 침묵을 깨고 돌연 수인 하나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면회대기소에서, 화태로 끌려가 벌목이나 탄광 노역에 동원될는지 모른다고 말했던 구레나룻 시커먼 젊은이였다. 석주율은 갑자기 질문을 받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인솔자 셋은, 그 참 맹랑한 놈이군 하는 표정으로 구레나룻 시커먼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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