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병원의 인술복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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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탐욕스런 이기심과 배금사장이 판을치는 살벌한 사막 같은 세상에서 한줄기 신선한 샘물을 만난 것 같은 감동을 받는다. 패덕과 비정이 얽히고 설켜 난무하는 세태에서 모처럼 찾아진 인정과 도리는 캄캄한 밤하늘의 두꺼운 구름 사이로 나타난 별빛처럼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광채를 발한다.
가톨릭 수녀들의 모임인 성가소비녀회가 운영하는 성가병원이 오갈 데 없는 행려병자와 무의무탁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무료병원으로 새출발한다는 『인술복음』(어제날짜 중앙일보 19면)을 접하는 우리의 느낌은 솔직히 그렇다.
지난 58년 설립된 성가병원이 이후 30년이 넘는 기간을 가난하고 병든 무의무탁자를 돌봐왔으나 값싼 진료비와 친절한 간호가 널리 알려져 일반환자들이 몰려왔고 수익도 올려 병원이 날로 번창중이었다 한다.
그러나 수녀들은 성가병원이 본래의 창립 목적인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자성을 통해 구호병원으로의 새출발을 결정한 것이다.
생명이 경각에 이른 응급환자가 치료를 거부당하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태가 흔히 발생하는 각박하고 비정한 우리의 의료풍토에서 이것은 분명히 매우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수녀들의 신앙적인 희생과 봉사정신,그리고 인간,특히 길잃은 양에 비유되는 불행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는 있기 어려운 갸륵한 일로 찬양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성가병원이 이처럼 무료구호병원으로 새출발함에 있어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아울러 당부의 말을 빼놓을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우선 정부와 각종 사회단체및 타 종교단체들의 성가병원에 대한 정신적 및 물질적인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료치료를 위한 한달 3천만∼5천만원의 비용을 성당별 후원회의 성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라 하나 이런 큰돈이 정기적으로 확보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사회ㆍ종교단체ㆍ기업ㆍ의료인ㆍ독지가들이 나서서 수녀들의 구휼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하겠다. 환자는 많은데 시설과 의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진료 자체가 부실에 빠지고,그러면 결국 병원의 기능보다는 대기주검의 수용소가 돼버릴 공산도 없지 않은 것이다.
또 성가병원의 무의무탁자를 위한 구호정신은 서울에 있는 성가병원으로 그칠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뿐만 아니라 범국민적인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도 각박한 세상에서 살면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심지어는 정신세계의 지도역할을 해야할 종교마저도 이타적 구원보다는 이기적 기복에 매달려 본래의 목적에서 일탈된 느낌이 없지 않다. 성가병원의 희생적인 봉사정신이 실종된 인정과 도리를 회복하여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고 붕괴된 도덕을 회생시킬 수 있는 범국민적 운동의 씨앗으로 커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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