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0) 늘푸른 소나무 - 제3부 범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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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원일 최연석 화
아침 6시에 기상, 십 분 뒤에 출방하여, 인원 점검이 있고, 수인들은 각 동별로 운동장에 집결하였다. 간수장전의 훈시에 이어 맨손체조, 뒤따라 구보로 운동장을 세 바퀴 돌고 모두 감방으로 되돌아와 다시 수감되었다. 그동안 석주율은 스승 백상충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여 여기 저기를 기웃거렸으나 끝내 뵐 수가 없었다.
아침밥이 배식되자, 간수가 감시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1022번, 사물을 챙겨두도록.』
석주율이 외역(외역) 마흔 명의 하나로 뽑힌 지 그저께로 일주일, 나흘이 지나도록 간수가 아무 말도 않더니 드디어 호명이 떨어진 것이다.
『허허, 정말 떠나는군. 내 여지껏 이렇게 심성 착한 젊은 분을 뵌 적이 없는데, 이거 섭섭해서 어쩌나.』
『우리한테 들려주던 세계 문명 발달 얘기도 이제 다 들었군.』
『동절기는 닥치는데 그 몸으로 힘든 일을 어찌 이길는지…부디 건강하시오.』
『언제 또 만납시다. 내 옥에서 나가면 울산군 청양면 화정리로 한번 걸음하리다.』
모두 한마디씩 하며 좁쌀보다 콩이 더 많이 박힌 식기를 받자, 연장자 황노인이 말했다.
『우리 떠나는 선생한테 콩밥이나 한 숟가락씩 정리로 보태줍시다. 그 밥 먹고 출옥할 때까지 강건하게 버텨내라고요.』
황노인의 말에 평소에는 콘 한 톨조차 아껴 먹는 수인들이 품에서 몽당숟가락을 꺼내다, 그 참 그럴듯한 의견이라며 쉽게 동의를 하였다. 주율이 감방 안에서는 가장 존경을 받은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그러고 싶었습니다. 아프기 전까지는 하루 두 끼 밖에 먹지 않았기에, 여기를 떠나면 다시 그렇게 하기로 작심하고 있었으니깐요.』
석주율은 아침 끼니를 굶기로 하고 자기 몫의 콩밥을 그들에게 한 숟가락씩 나누어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양보를 못하겠다는 화기애애한 승강이 끝에 황 노인이 서로 바꾸어 먹기를 제의하여, 석주율이 자기 식기의 밥을 열두 명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의 밥을 다시 받는 번거로움을 거쳤다. 그러나 그런 의식이, 감옥 안이지만 우의를 한결 돈독하게 해주었다.
식사가 끝나자 시찰구를 통해 식기를 거두어 갔다. 간수는 석주율에게 사물을 가지고 출방하라고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모두 무사히 출옥하시면 선한 마음으로 조선인을 도울 수 있는 일에 매진하십시다.』
사물이라야 옷 보퉁이만을 들고 감방을 나서며 석주율이 말했다. 그는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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