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신문 '오늘의 운세' 분석 신문마다 운세 왜 이렇게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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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취업준비생 정종연(26.가명)씨는 신문에 실린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22세 되던 해부터 오늘의 운세를 접했다. 정씨는 "처음에는 재미로 봤지만 언젠가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의 운세는 꼭 챙겨본다"며 "아침에 봤던 그날의 운세가 좋지 않으면 그날은 꼭 안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에 미리 주의를 하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정씨는 어느 대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넣던 날도 '오늘의 운세'를 참고했다. 원래는 이력서 작성 등 준비를 모두 마친 지난 9월 13일에 지원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날 신문에 나온 운세가 개운치 않았다. A신문에 나온 13일 정씨의 운세는 '가슴이 찡한 감동을 받아도 한 번에 믿어서는 안 된다'라고 나와 있었다. 정씨는 입사지원을 하루 미루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한 번에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14일 신문이 오자마자 오늘의 운세면을 폈다. 그날 정씨의 운세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님이 웃으니 가슴이 벅차고 세상이 모두 내 것 같구나'라고 나와 있었던 것이다. 뜻밖에 운세에 기분이 좋아진 정씨는 그 운세를 보자마자 바로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정씨는 "이틀 중 아무 때나 넣었어도 결국 합격의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나의 실력임을 알고 있다. 그래도 운세가 좋은 날 지원해야 합격 가능성이 더 크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반문했다.

6개 신문 운세 '헷갈리네'

신문 한쪽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 잡은 '오늘의 운세'는 국내에서 발행되는 대부분의 일간지에 실려 있다. 그럼 신문들은 왜 오늘의 운세를 싣는 것일까? 한 신문 관계자는 "딱딱한 사건, 경제 기사 안에 숨겨진 하나의 재미라 할 수 있다. 예상 외로 독자들이 선호하는 코너"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쉬어가는 코너로 만든 것인데 보는 독자들이 많아 계속 싣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떤 독자는 "그리 신뢰할 만한 자료는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눈에 띄면 오늘의 운세를 본다는 대기업 과장 이모(40)씨는 "한두 명도 아닌 사람들의 운세가 태어난 해가 같다고 해서 모두 같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심심풀이로 보는 것이지 그 운세를 전부 다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9월 13일부터 20일자까지 중앙.조선.동아일보 등 6개 일간지에 실린 오늘의 운세를 분석한 결과 운세는 제각각이었다.

6개 일간지는 1924년생부터 1986년생까지의 운세를 제시했다. 일주일 동안 이들의 운세는 총 2525건이었으며 그중 2113건은 좋은 내용이었다. 좋지 않은 내용으로는 '때아닌 회오리를 조심하라' '뜻밖의 화가 있어 신상에 근심이 생길 것이다' '감정적으로 조종당하기 쉽다' 등이었다.

올해 30세인 77년생의 운세를 기준으로 했을 때, 14일 조선일보 운세는 '중요한 일은 오후에 처리하면 좋다'고 나와 있었다. 반면 같은 날 경향신문은 '기다릴 줄 아는 자가 기회를 잡는 법'이라는 운세를 보여줬다. 이 두 가지만 놓고 보면 중요한 일을 당장 처리하란 것인지, 아니면 기다리란 것인지 헷갈린다. 이 밖에도 14일 중앙일보는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서 구함'이라 전했고 문화일보는 '윗사람과 상의해 진행하세요'라는 모호한 운세를 제시했다.

이렇게 제각각인 오늘의 운세가 얼마나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을까? 64년생 용띠인 윤용운(기업은행 차장)씨, 74년생 범띠 이수원(벤처기업 근무)씨와 82년생 개띠인 강유경(성신여대 4)씨는 이구동성으로 "운세가 포괄적이라 특정 상황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8일자 64년생의 운세를 보면 중앙일보는 '분주하기는 하지만 실속은 별로다', 조선일보는 '움직일수록 어려움이 생긴다', 경향신문은 '청사진은 좋은데 현실은 의문이다', 동아일보는 '가족과의 나들이를 계획하라'고 나와 있다. 18일 윤씨는 "업무량이 많아 업무에 대한 부담을 느꼈고 업무 진행 때 효율성이 떨어진 날"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운세가 비교적 맞는 것 같았고 동아일보의 운세는 전혀 뜬금없는 소리"라고 말했다.

또 같은 날 가족 간의 문제를 겪었던 이수원씨는 '가정사 문제로 걱정이 된다'는 조선일보 운세가 잘 맞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강유경씨는 "경향신문에 나온 '작은 손해는 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운세가 가장 자신의 처지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강씨는 중앙일보의 '도전 정신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운세와 문화일보의 '천천히 하세요'라는 운세에도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어제는 힘들어도 오늘은 편안하다'란 운세는 전혀 맞지 않는 운세라고 했다.

유명 역술인들이 집필

이러한 결과에 대해 이씨는 "한두 문장으로 정리된 운세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다시 말하면 하루에도 여러 가지 상황을 겪는 입장에서 '무리한 목표는 수정하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습니다'라는 운세들은 어떠한 상황에도 다 대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렇듯 일간신문에 나오는 한두 문장이 모든 사람의 운세를 맞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각 언론사에서는 운세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서는 운세 이외에 '재물' '건강' '사랑' 등 총론까지 곁들이고 있다. 또 경향신문은 '행운의 사람' '주의할 사람'이라는 것으로 운세를 보충하고 있다.

중앙일보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는 역술인 조규문씨는 동양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대전대 철학과에서 사주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또 조씨는 성균관대.경기대 등에서 철학과 강사로 임용돼 사주와 관련된 강의까지 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 98년부터 천문지리학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박정민씨가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고 있다. 나머지 신문들에 오늘의 운세를 내고 있는 역술인들 역시 역술업계에서 알아주는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역술인 조씨는 "탄생 월일과 개인의 조건이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띠만으로 오늘의 운세를 내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독자들이 운세는 다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주기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신문사 측에서도 신문 읽는 재미를 덧붙이기 위해 오늘의 운세를 싣고 있다. 이것을 읽는 독자들도 한두 문장으로 정리된 운세를 모두 신뢰하기보다는 하나의 재미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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