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전주시 중앙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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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유승국(의사·유네스코 전북협회장)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으나 칠순 나이의 내과의사인 나는 세월이 갈수록 구수하고 인정이 넘치는 옛 고향 시골집 된장 맛이 그리워진다.
육류는 소화가 잘 안 돼 속이 거북하고 요즘 흔히 전통음식이라는 간판이 달린 음식점을 발견, 반갑게 들어서면 화학조미료 내음이 진동, 이름은 옛 이름이로되 맛은 옛 맛이 아니어서 실망한다.
8년 전부터 한 달에 서너 차례 단골로 다니는 「귀향」(0652⑥3550)만이 나의 이러한 갈증을 풀어준다.
제일은행 전주지점 맞은편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반대쪽 골목길과 만나는 지점에「귀향」이라고 써내건 초롱이 허름한 전통 한옥 처마 밑에서 흔들거린다.
자녀들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해서「귀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집은 50대 아주머니의 손맛이 나에게 고향집 맛을 느끼게 한다.
메뉴는 주물럭·곱창구이·곱창전골·된장찌개 등 4종이 있으나 이 가운데 내가 가장 즐겨 찾는 음식은 한 그릇에 2천5백원 하는 된장찌개다.
메주를 3개월이나 띄워 만든 된장으로 끓여 내는 된장찌개는 옛 고향맛 그대로다.
여기에다 절인 풋고추와 고춧잎·고들빼기·도라지·깻잎 등 밑반찬이 곁들여져 소식을 하는 나지만 밥 한그릇을 순식간에 비워낸다. 쌀을 한시간 이상 물에 담갔다가 지은 밥은 고슬고슬하고 진득진득해 입안에 진기가 가득하다.
직접 담근 된장과 화학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볶아 빻은 가루소금으로 맛을 내는「귀향」은 나의 단골일 뿐 아니라 맛의 고장 전주의 단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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