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 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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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내년 4월부터 아파트 분양원가가 공개된다. 구체적인 원가공개의 범위와 대상, 절차는 민.관 합동으로 구성할 '분양가제도개선위원회'(가칭)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제도가 만들어지던 분양원가 공개는 새로운 쟁점과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원가 공개를 통한 분양가 인하, 주택가격의 안정 등 효과 측면에서 논란이 분분한데다 원가공개 자체가 시장경제 논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은 물론 민간의 아파트 공급을 줄여 주택시장이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입법화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얘기다.

원가 공개 어떻게 하나

이미 한국토지공사 등 공공기관이 조성한 공공택지의 주택에 대해선 부분적으로 원가가 공개되고 있다. 공공택지에서 건설되는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모든 주택과 25.7평 초과 가운데 공공기관이 짓은 주택에 대해선 택지비 등 7개 항목, 25.7평 초과 민영주택은 2개 항목의 원가만 공개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원가공개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이상 공공택지 주택의 공개항목이 대폭 확대되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남는 것은 민간 건설업체가 직접 땅을 조성해 짓는 주택이다.

건교부는 "민간 주택의 분양원가도 공개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가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칙적으로는 공개 대상에 포함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공공택지에서만 원가가 공개되도 사실상 원가공개가 전면 실시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금도 연간 분양되는 주택 가운데 공공택지에서 지어지는 물량이 70%를 넘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주택공사의 공급 능력을 확대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한 것처럼 공공택지는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된다.

또 공공택지에서 분양원가가 공개되고 있는 이상 인근에 지어지는 민간택지 주택은 자연스럽게 분양가 인하의 압박을 받게 된다.

D건설 관계자는 "분양원가가 공개된 아파트보다 높게 민간 아파트를 공급한다면 시민단체나 청약자들이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공공택지의 원가 공개는 사실상 원가 공개의 전면 시행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분양가 인하, 집값 안정 효과 기대"

참여연대는 그동안 "원가가 공개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건교부도 이왕 원가를 공개하기로 한 이상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검증의 구체적인 기준이나 방법, 주체 등에 대한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분양원가 상세 항목만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건설업체가 가져갈 이윤의 적정성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원가공개 논란이 촉발된 것이 건설업체가 과도한 이윤을 챙겨가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원가가 공개되고 이를 검증하게 되면 건설업체로선 과다한 이윤을 책정해 분양가를 매기기 힘들 것"이라며 "적정하고 합리적인 이윤이 분양가에 붙여진다면 분양가가 내려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원가를 공개하더라도 실익이 별로 없다는 건교부의 종전 입장과는 크게 달라진 분석이다.

이 관계자는 특히 "채권입찰제가 시행된 판교의 분양가에 견주어 건설업체가 용인의 분양가를 높이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것"이라며 "원가가 공개되면 그러한 행위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높게 책정된 분양가 때문에 주변 집값이 들섞이는 사례도 줄어 원가 공개가 전반적인 집값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게 건교부의 분석이다.

"득보다 실이 크다"

연세대 서승환 교수(경제학)는 "원가를 공개하더라도 분양가 인하 효과가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고, 집값 안정효과도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평뉴타운 같이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높은 것은 일부 특수한 경우이고 대부분은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가 곧바로 시세를 따라잡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원가로 분양가가 낮아지더라도 집값 안정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원가가 공개되면 '적정한 이윤'을 견뎌낼 수 있는 업체만 주택시장에 뛰어들 것이기 때문에 주택공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소수의 건설업체가 주택시장을 쥐락펴락하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분양가는 오히려 오를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토론회에서 주택공급이 줄어드는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원가 공개는 시장경제 논리, 기업의 생존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서울대 이창용 교수(경제학)은 "기업은 돈이 되는 곳에선 이윤을 많이 남기고, 그렇지 않은 곳에선 이윤을 적게 남겨 전체적인 포토폴리오를 구성한다"며 "따라서 모든 사업에서 '적정한 이윤'만 남기라고 강제하는 것은 기업의 생존 원리를 부인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2004년 원가공개 논란이 빚어졌을 때 "분양원가 공개는 자장면의 원가를 모두 내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최근 권도엽 건교부 정책홍보관리실장도 원가공개에 대해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택업계 "집 못짓게 하는 것"

주택건설업계는 "집을 짓지 말라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주택협회 남희용 정책실장은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원가를 낮춰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원가가 공개되면 원가를 낮출 이유가 어디 있느냐"며 "원가가 공개되면 분양가 인하를 위해 원가를 더 낮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는 품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 건설업체 임원은 "정부가 땅값을 잡지 못해 분양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게 해놓고는 원가공개를 통해 분양가 상승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 공개로 정부가 의도하는 집값 안정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김홍배 부회장은 "원가 공개로 높은 이윤을 추구하기가 어려워지면 업체들이 주택사업을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분양가 자율화에 역행하는 것으로 단기적으로는 분양가 인상에 제동을 걸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품질저하와 주택공급부족 등 더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땅값이 감정가격 이하인 공공택지와 달리 민간택지에선 원가 공개로 분양가 상승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일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민간택지에선 땅값 오름세가 크고 같은 지역에서도 땅값이 천차만별"이라며 "비싼 땅값을 근거로 분양가를 높게 매길 경우 원가 공개는 높은 분양가를 인정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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