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개방파 득세 교류동결/북한,금강산개발 무효선언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연형묵등 온건경제파 밀린듯/남북 빗장닫고 미·일 직접 접촉 겨냥도
북한이 16일 현대그룹공여장비의 인수를 거부하면서 금강산합작개발계약의 무효선언까지 한 것은 남북교류와 개방을 거부하는 폐쇄정책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표시로 최근 드러나고 있는 일련의 대남강경자세의 연장선장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지난 7일의 대남전통문에서 콘크리트장벽제거와 당국·정당수뇌협상회의를 남북대화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함으로써 각종 남북회담을 사실상 거부했다
북한은 또 지난 14일자 전통문에서는 우리가 22일 개최를 요구한 고위급회담 예비회담에 대해 차후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날짜를 가급적 빨리 통지하겠다고 밝혀 이를 연기시켰다.
이것은 팀스피리트훈련 종료후에는 대화가 재개되곤 했던 전례와 예상을 뒤엎은 것으로 북한이 일단 대외교류보다는 내부체제정비에 우선 주력해야할 필요성에 직면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최근 대내및 대남방송에서 『우리식대로 살아가겠다』 『사회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밝혀 소련이나 동구의 개혁·개방물결을 페쇄·고립적인 체제유지정책으로 막아 보겠다는 태도를 보였었으며 이번 금강산개발 무효선언도 개방교류물결의 유입을 회피하려는 일련의 맥락에서 해석된다.
물론 이번 현대의 물품인수거부선언은 물품의 도착전에 무상공여사실이 사전공개된 데 따른 자존심문제라는 측면도 있다.
정부는 당초 오는 29일의 물품 북한도착때까지 북한의 체면을 생각,이를 발표하지 않으려 했으나 일본언론에 사전보도됨으로써 할 수 없이 이를 발표했다. 따라서 물품공여거부는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금강산 합작개발은 북한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던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이의 무효선언은 북한의 입장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즉 금강산관광개발은 대외신용실추로 선금지불을 해야 물건을 수입할 상태에 이른 북한의 달러수요를 충족시켜주면서도 개발지역이 금강산일대로 제한돼 일반주민과는 접촉을 피할 수 있는 사업으로 북한의 구미에 맞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한 것은 현대의 물품무상공여공개가 당지도부의 체면을 건드린 데다 합작사업자체가 우리측의 선전자료로 쓰이지나 않을까하는 의심과 합작이 이뤄지면 결국 어느정도 사회의 개방이 불가피한 점을 피하려는 의도가 복합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금강산개발무효화는 이로인한 개방압력등을 걱정해왔던 강경파쪽의 의견이 먹힌 것이라는 게 관계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대남강경자세는 경제통인 연형묵총리,김환부총리 등 경제재건쪽에 관심이 큰 온건파와 김중린대남공작총책,안병수조평통서기국장 등 대결공작위주의 강경파간 대립에서 강경파가 득세한 신호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측의 내부정정이 불안하다고 보고 이른바 남한내 혁명역량의 성숙을 기다리며 선동,대결을 강화해나가겠다는 판단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우리국내의 노사분규·부동산문제와 관련해 대남선동방송등에서 재벌을 강력히 비난해온 것도 재벌과의 합작을 거부하는 강경파목소리가 강화됐다는 의미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이같은 대남강경자세와 함께 제3세계와 미·일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있어 외교적으로는 우리의 북방정책성과에 대항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최근 제3세계에 잇따라 고위급 인사들이 포함된 순방사절단을 보내는 한편 무바라크이집트대통령,부토 파키스탄 총리의 어머니이며 집권당수인 누스라트 부토,아라파트 PLO의장 등을 초청,북한을 방문케했다.
이와함께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유해를 오는 28일 미국측에 인도키로 함으로써 대미유화자세도 보이고 있다.
특히 전인철북한외교부 부부장은 15일 미­북한간의 관계개선을 희망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을 정도다.
북한은 지난 15일 북경주재 미­북한외교관 접촉에서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했으나 ▲남북대화진전 ▲테러포기 ▲핵안전조치 협정가입 등의 미측의 기존전제조건때문에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대미접근은 우리의 대소접근및 동구권국가와의 수교성과를 상쇄시키려는 의도외에도 우리당국을 인정치 않고 미국과의 직접대화로 한국을 고립시키겠다는 대결외교의 일환이며 최근 우리쪽의 상황이 그러한 기대를 고무시키는 것으로 본다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북한은 당장 오는 24일 제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제1차 대회에서 주석등을 선출하는 대규모 행사를 눈앞에 두고있다.
북한은 4년마다 열리는 대의원대회에서 새로운 대남정책을 발표하고 이를 배경으로 남북대화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설사 대화가 예상보다 빨리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강경노선이 우세한한 선전공세 이상의 실질적 진전에는 소극적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조현욱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