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 사회적 합의기준 제정 아쉽다|,한국부인회·가정법률 상담실 이혼상담에 비친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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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특정 계층에서부터 비롯된 과다혼수가 점차 사회일반으로 확산되면서 혼수문제로 이혼하는 가정이 늘어나는 등 가정파탄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혼수가 본래 새 가정을 이룰 때 필요한 물품을 일컫는 것이었으나 근래 들어 시댁어른들에게 드리는 선물인 예단과 합친 의미로 통용되면서 더욱 심각한 양상을 빚고 있다.
한국부인회 법률상담실에 작년 한 햇 동안 접수된 상담건수 2천8백80건 중 가사사건이 1천2백86건(44·7%)이며 이 중 이혼상담은 2백39건(18.6%)으로 나타났다. 놀랍게도 이혼상담의 51.5%인 1백23건은 혼수가 주 쟁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가정법률상담소의 경우 지난 2월 한달 동안 처음 상담한 1천88건 가운데 4백64건(34%)이 이혼사건. 이중 1백48건(32%)이 「혼인을 지속하기 어려운 중대사유」로 인한 것이며 그 가운데서도 단순히 혼수 때문인 경우만도 24건(5.2%)이 되고 있다. 이는 곧 날마다 한 가정씩 혼수 때문에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들 상담이 일단 결혼한 후의 이혼문제에 국한돼 있으며,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혼수문제가 말썽이 돼 결혼 자체가 취소되거나 파혼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혼수의 심각성은 더해지고 있다.
한국부인회 배성심 법률상담실장은 『한 직장여성의 경우 사귀고 있던 직장동료 남성과 결혼키로 약속했으나 준비과정에서 신랑측이 전세 값과 결혼식비용까지도 여자 측이 부담할 것을 요구해 이를 반씩 나누자고 했다가 결국 결혼까지 취소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인회가 실시했던 혼례 혼수에 대한 의식조사에서 요즈음 젊은이들은 집은 신랑 측이, 가재도구는 신부측이 마련하는 선이 적당하다고 믿고 있으며 예단 또한 직계가족까지로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등 건전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결혼할 자녀를 둔 부모, 특히 신랑측 어머니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과다혼수는 대부분 시어머니 측이 요구하고 있으며,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경우 이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혼수문제로 성스러운 결혼이 더 이상 파탄을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건전한 기준을 정해 추진해 나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여론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김찬호씨(연세대강사·문화인류학)는 『과다혼수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논리와 전통사회의 의식이 접합돼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인 획일주의와 남아선호사상이 맞물려 악순환이 가중되고있다는 것이다.
즉 부·권력·명예가 분산되지 않고 이를 모두 취하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어 「결혼」을 통해 이를 「사고자」한다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벌어 먹인다』는 의식에다 일생을 책임져주는데 대한 대가를 요구하게 되며, 특히 신랑 어머니의 경우 가정의 정서적 고리로 연결돼있던 자신의 「소유물」을 며느리에게 내주는데 대한 보상을 받고싶어한다는 것이다.
김씨는『과다혼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결혼을 왜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결혼은 당사자가 한다』는 인식을 굳건히 하는 한편 부모를 설득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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