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서와 밀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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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상에는 숨겨도 되는 거짓이 세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버지의 잘못을 자식이 숨기는 경우다. 물론 아들의 잘못도 아버지는 숨겨준다. 논어에선 그것을 부자상은이라고 했다.
어느날 공자는 제자로부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 제자는 자기 고을에 사는 궁이라는 사람의 미담을 소개했다. 그는 얼마나 정직했던지 자기 아버지가 남의 집 양을 훔친 사실을 관청에 밀고했다고 자랑했다.
이 말을 가만히 듣고난 공자는 말했다. 『아버지의 허물은 숨겨두는 것이 오히려 정직한 것이다.』
두번째로 숨겨도 되는 것은 인정있는 거짓말이다. 가령 못생긴 여자를 보고 얼굴이 예쁘다고 해도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다. 나이든 여자에게 『어쩌면 그렇게 젊어 보이느냐』고 능청을 떨어도 눈을 흘기지 않는다.
셋째는 남의 불행과 슬픔은 거짓으로 덮어두어도 괜찮다. 용태가 아주 나쁜 암환자에게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부도덕일 수 없다. 설령 의사가 그런 말을 했다고 악덕의사라고 문제삼지 않는다.
의리와 인정많은 동양사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카르멘』을 쓴 프랑스 작가 P 메리메의 소설 『마테오 파르코네』에 나오는 얘기다. 파르코네라는 농부 내외가 일을 하러 간 사이에 외아들이 집을 지키고 있는데 느닷없이 이상한 사람 하나가 들이닥치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 순간 한 무리의 헌병이 뒤쫓아와 도망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소년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헌병상사는 회중시계를 꺼내 흔들며 소년을 유혹했다. 결국 소년은 도망자가 숨은 쪽을 가르쳐 주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온 소년의 아버지가 그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그길로 엽총을 꺼내들고 외아들을 냇가로 데리고 갔다. 잠시후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다. 그 아버지는 밀고를 용서하지 않았다. 법정신이 투철한 서양사람들도 밀고는 부도덕한 일로 치부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공직자의 비리내사와 함께 사정당국에 투서가 산더미로 밀려든다고 한다. 비록 부정공직자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고 해도 개명천지 밝은 사회에선 사법기능에 맡겨야 옳다. 밀고는 음산한 세상에서 음산한 사람들이나 할 일이다. 사정당국은 그 점에서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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