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의 지리산 가을편지] 물수제비를 뜨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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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의 강아지 '나무'와 함께 섬진강 변 산책을 하다가 물수제비를 뜹니다. 둥글고 납짝한 조약돌을 골라 산 그림자 어리는 수면 위로 힘껏 던지면 츠츠츠츠, 파문을 일으키며 나아가지요. 물고기들이 파문의 질투심을 못 이겨 예저기 뛰어 오르고, 강아지는 꼬리치며 멍멍 짖어댑니다.

물수제비라면 자신이 있지요. 그 요령은 먼저 조약돌을 잘 골라야 하고, 수평으로 던지되 돌에 강한 회전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비가 물을 차면서 공중목욕을 하듯이 날아가지요. 고수라면 강폭 50여 m 정도는 사뿐 넘겨야 하고, 그 조약돌 윗면이 젖지 않아야 합니다. 언젠가 그런 고수를 만나 강을 사이에 두고 돌 하나를 주고받고 싶습니다.

물수제비를 뜨는 건 돌에 마음이라도 실어 피안에 이르고 싶어서겠지요. 그런데 강 건너 저쪽에서도 누군가 이쪽을 향하여 츠츠츠, 물수제비를 뜹니다. 순간 차안이 피안이고, 피안이 차안이 됩니다. 저승에서도 누군가 엿본다면 바로 이곳이 저승처럼 보이겠지요. 지리산 노고단을 올려다보며 막 날개를 펴려는데 산너머 누군가 날개를 접고 있습니다.

이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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