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T셔츠 〃중국교포 어린이들에 입히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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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조선족 어린이들에게도 한글 T셔츠를 입히고 싶습니다. 』
국내에서 제작된 동시화 T셔츠를 구입해 중국의 교포어린이들에게 입히기 위해 멀리 서울까지 날아와 기금마련 자선서화전을 갖는 중국동포 화가가 있다. 중국하얼빈시 국화창작실에 소속된 직업화가인 권오송씨(32·중국하얼빈시남강구)가 바로 주인공. 서울(13∼16일·세종문화회관 전시실) 광주 (22∼27일·화니백화점 미술관)전시회에 이어 대구전도 추진중이다.
권씨가 한글 T셔츠를 처음 본 것은 작년 가을. 연변미술가협회 골간 (골간은 대의원과 비슷하다)이기도한 그는 미협일로 연변에 들렀다가 조선족어린이가 이 옷을 입고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가슴 한가운데서 뜨거운 그 무엇이 솟구쳐 오르는 전율을 느꼈던 그는 이름도 모르는 그 어린이를 붙잡고 몇번씩이나『참 좋고 귀중한 것이니 소중히 간직하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이 한글T셔츠는 지난해 8월 숭례원 주최로 현대백화점에서 열렸던 동시화 T셔츠 전시회에서 작품제작을 맡았던 전미회(회장 우정제)회원들이 보내준 것.
「6천만 겨레의 가슴에 시심을」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1차로 동심에시 시심을 심어주자는 뜻에서 기획됐던 이 전시회는T셔츠 한점 한점에 『안개와 산』 『너와 나』등 한글동시 1편 과거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 넣어 마련한 것이다.
이화여대·성신여대·동덕여대·국민대·홍익대 등5개대 미술대학생 25명으로 조직됐던 부미회는 예상보다 호응이 크자 이를 중국연변과 소련 사힐린에 사는 동포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후원금을 모금, 작년8월 적십자사를 통해 1천2백벌의 T셔츠를 중국연변에 보냈다.
수소문 끝에 이 사실을 알아낸 권씨는 중국에서 한글신문을 발행하는 흑룡강신문사를 찾아가 『조선족 어린이들 모두가 고국에서 만든 한글 T셔츠를 입어 민족심을 가꿀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면서 자신의 자선서학전을 제안했다.
권씨의 뜻에 공감한 흑룡강신문사 홍만활 사장은 지난 4월 숭례원측에 권씨의 전시회후원을 요청, 뜻을 이룰 수 있게 됐다· 『한국인민들이 중국에 있는 조선족 어린이를 많이 봐달라고 쫓아왔습니다. 』 가끔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안타까운 듯 이마를 손바닥으로 때리곤 하는 그였지만 『후대들이 민족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나가도록 해야 한다는데 사명감을 느낀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정열적으로 우리말을 쏟아놓았다.
권씨의 집안은 경북안동 출신 할아버지가 아들·며느리를 데리고 중국으로 이주, 그 자신은 중국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은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자신도 어렸을 때는 우리말을 「단단히」 배웠지요. 』 그러나 커나가면서 현실적으로 중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중국말을 보다 능숙히 하는데 신경을 기울이다보니 우리말을 대부분 잊어버렸다고 실토한다.
『중국전체 조선족이 약2백만명이 되므로 어린이는 적어도 20여만명은 될 것』 이라고 내다본 그는 『뜻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이 있다』고 밝게 웃어보였다.
권씨는 85년부터 직업화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중국내 약2천명의 직업화가 가운데 조선족 출신은 극소수다. 권씨는 이번 전시회에 산수·인물화를 중심으로 한 70여점을 출품하는데 이중에는『설악산』등 국내에서 제작한 것도 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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