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최우선」이 가정교육 망친다|「가정의 달」 맞아 전문가에 우리 가정 현주소·처방을 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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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가정교육은 학교교육·사회교육과 함께 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3대 요소 중의 하나다. 가정이 사회를 이루는 기초단위라는 점에서 가정교육은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근래 우리 가정교육은 「실종」이란진단이 내려질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오늘날 우리 가정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전문가의 처방을 구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최현아양(9·가명·국교3년)은 서울압구정동 H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지방에서 의원을 개업하고 있는의사 가정의 딸로 학업을 위해 서울로 온 것이다.
가끔씩 지방에 있는 엄마가 서울을 다녀간다. 최양은 처음에는 지금의 아파트 이웃에 있는 이모네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이모를「경희엄마」라고 버릇없이 부르는 최양은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걸레 빠는 일까지 하지만 집의 현관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귀족이 돼 손끝도 까딱하지 않는 것은 물론 통제가 불가능한 어린이가 돼버린다. 최양의 어머니는 『수준이 안 맞는 경희엄마의 잔소리를 못 참겠다』고 불평하는「하나밖에 없는 공주」인 딸을 위해 마침내 따로 아파트를 구하고야 말았다.
이것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요즘 우리 가정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태화기 독교사회복지관 정신건강상담실 강경혜 실장은 『밥상만해도 과거에는 좋은 반찬은 부모의 몫이었으나 요즘에는 아이들 차지가 돼버리고 있다』면서 『자녀들을 왕자·공주로 키우다 보니 부모는 시종으로 전락하기 일쑤』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같이「웃어른 섬기기」가정교육이 실종된 상태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도 계속 대접을 받으려하는데 반해 부모들은 이제는 자녀들로부터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생각, 서로의 기대치가 상반되면서 혼란과 갈등을 빚게된다고 분석했다. 가정교육을 통해 위계질서를 익히지 못한 자녀들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학교·사회생활에서도「버릇없는 아이」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 위례국교 민경현 교장은 『생활습관이 잘못돼 있거나 올바른 예절을 익히지 못한 어린이들이 학교에서도 종종 눈에 띈다』고 말한다. 선생님께 인사를 할 때도 『안녕하세요』하고 마치 고갯짓하듯 고개만 까딱거리는 아이들이 태반이라는 것. 환한 대낮에도 교실에 켜져 있는 전등을 아무도 끄지 않는다든지,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는다든지,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 등은 모두 가정에서 경제의식을 길러주는 교육이 없는 탓이라고 민교장은 말한다.
빗나간 가정교육의 흔적은 자녀들의 교우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작년 한햇동안 한국 어린이보호회「신나는 전화」에 접수된 어린이·부모들의 상담 9천2백26건 가운데 16.5%가 교우관계에 관한 것으로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친구가 자신을 제일의 친구로 여겨주길 바라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어린이들의 불만의 호소이거나 자녀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부모들의 염려들이다.
이 회 정혜영 상담실장은십 특히 상담어린이들은 자신은 여러 친구를 사귀어도 상대방은 나만 생각해야한다는 경향이 지배적』이라고 말하고『적은 자녀의 가정에서 모든 일을 자녀 중심적으로 처리하고 늘상「네가 최고」라는 의식을 심어준 까닭에 자기중심적이 되거나 반대로 자신을 나타내지 못하게 돼버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늘날 이처럼 올바른 가정교육이 실종되고 있는 주원인은 시험위주의 교육제도 때문』이라고 한국부인회 배성심 법률상담실장은 말한다. 「공부 잘하는 것만이 최고」이고 「대학입학이 곧 효」가 되는 실정 하에서 가정교육의 한 방법이 되는 부모들의 훈도는 할 시간도 틈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설픈 자유방임적 자녀교육관, 소자녀의 과잉보호도 가정교육부재를 부채질하고 있다.
민교장은 『6·25 전쟁으로 우리 전통의식이 뿌리째 뽑힌데다 서구문명까지 밀려들어 어느 것이 우리가정에서 지켜야할 것인지 모르게 된 것이 가정교육실종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가정윤리를 세워나가는 것이 가정교육을 되살리는 지름길임을 강조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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