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 소나무(955)-제2부 세속 타락(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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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저는 창원군 진동면 사람이외다. 본은 김해이고 김효범이라 하지요.』
목소리 걸찍한 자가 자기 소개를 하였다. 범상의 얼굴에 코밑 수염을 기른 마흔 중반의 사내였다.
김효범은 3월24일부터 4월29일까지 진동 읍내와 마천 일대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진 만세운동을 자상하게 소개하였다. 특히 4월2일 읍내 만세운동을 자상하게 소개하였다. 특히 4월2일 읍내 만세시위는 5백여 명이 참집하여 그 기세가 대단했다는 것이다. 밀정의 고자질로 체포되어 실형 1년8개월에 처해져 부산감옥으로 넘어왔다 하였다. 백상충도 간략하게 자기 소개와 울산지방 남창·병영 독립만세운동의 경과를 설명하였다.
『내 북 3동에 있다 이쪽으로 이감해온지 열흘째되는데, 그쪽에 있을 때 국내외 정세를 소상히 알고 있는 동지를 만났소이다. 혹시 중국 대륙 상해쪽 소식을 들은바 있는지요?』
『3월1일과 2일에 한양에서 터진 만세시위에는 저도 참가를 했습니다만 곧 향리로 내려왔기에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는지요?』
『민족자결을 외치며 거족적으로 일어난 삼월만세운동에 힘을 얻어 3월 하순, 경서에 한성임시정부가 , 노령 연해주에 대한국민회의가, 만주 간도에 군정부가 수립되었답니다. 말은 정부 대행이지만 그렇게까지 볼 것은 없고 서로 연락이 힘드니 따로이 독립협의회랄까 그렇게 단체를 만든 게지요. 그런데 그 중 지난 양력 4월10일에 중국 대륙 상해에서도 막강하다고 들었습니다. 』
『어느 분들이 주동이 된 단체입니까?』
『이승만·안창호·김규식·이동휘·이시영 등이라고 들었지요. 법국이 빌려 쓰는 구역 안이지만 간판을 걸고 태극기를 내달았다니, 듣기만해도 감개가 무량합디다.』
백상충 역시 김효범과 같은 마음이었다. 만세운동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생겨남에 따른 대가겠지만 그 정도의 조직이 국내외에 만들어졌다 함은 대견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족구 광복에 앞으로 얼마만큼 끈기있게 헌신할는지 모르나 독립운동 조직체는 자꾸 생겨나야 하고 큰 인물이 그런 조직체를 통합하여 일사불란하게 투쟁에 임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자신은 2년 넘이 옥에 갇혀 있어야 하니 수족이 묶인 신세를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북 3동에 계실 때 함명돈 선생이라구 울산태생을 만난 적이 없으신지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석주율이란 젊은이는?』
『울산 분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백상충은 더 물을 말이 없었다.
김원일 최연석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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