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깊이읽기] 시사고발 프로 취재원 보호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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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는 명백하다. 스스로 밝힌 바대로 '부조리한 제도와 인습을 고발하고 고통받는 소외계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거나'(MBC PD수첩), '우리 사회의 구조적 비리를 고발하기'(SBS 뉴스추적) 위함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어떤 엄청난 고발도 취재원의 인권 보호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지난 14일 PD수첩이 방영한 '2003, 위기의 주부'는 이 간단명료한 사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충실한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평범한 주부들이 접대부나 다름없는 노래방 도우미로 취업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한 것은 높이 살 만했으나, 인터뷰에 응한 주부 도우미들의 신원 보호에 무신경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방송 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취재원)모자이크 처리를 제대로 안하는 것도 일종의 인권침해' '모자이크 처리가 엉망이다. 그 분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봤나' 등의 비난 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PD수첩은 인터뷰에 응한 도우미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고 항변할 지 모른다. 그러나 "자식은 엄마가 도우미 일 하는 줄 모른다"는 도우미의 집 내부를 그대로 비춘다든지, 아무리 취재원의 입을 빌렸다고는 해도 상세한 개인사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은 제작진이 취재원의 사생활 보호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피할 여지가 별로 없다.

사실 고발 프로그램의 취재원 인권 침해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6월에는 SBS '뉴스추적'이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변사항을 노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피해자 얼굴을 TV 화면에 내보냈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취재원의 인권을 담보로 한 것이라면 차라리 안하니만 못하다는 것을 고발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알았으면 한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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