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 소나무(954)-제2부 세속 타락(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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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백상충이 간수에게 끌려 감방으로 들어가니 대여섯평 됨직한 방 속에 물경 서른 명을 헤아릴만한 죄수가 빼곡이 들어앉아 있어 어디 발디 딜 틈이 없었다. 오물 썩는 퀴퀴한 내음과 쉰내가 각색의 복장을 한 감방 안 사람들을 두러보아도 백상충의 눈에 모두 낮이 선 자들이었다. 앉을만한 타가 없어 상충이 멀쑥히 서 있었다.
『앞에 앉은 이가 자리라도 내줘야지.』
뒤쪽에서 걸찍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오줌과 버캐로 철철 넘치는 변기통 옆에 앉아 있던 서너 사람이 콩기름 짜듯 바짝 죄어 낮아 도래방석만한 터를 마련해주었다. 백상충이 그 터에 엉덩이를 붙였다. 콱 쏘는 뒷간 냄새가 숨길을 막았다.
『만세꾼이십니까?』
옆에 앉은 학생복 입은 젊은이가 물었다.
『그러하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갑니까. 바깥소식이라도 전해주십시오.』
『두 달을 유치장에 살다 여기로 와서 나도 잘 모르오.』
『이 방 사람들중 몇을 빼고는 모두 만세운동을 하다 들어왔지요. 부산 감옥도 만세운동 꾼으로 터져나갈 지경이랍니다. 어느 감방이나 다 이렇게 콩나물 시루지요. 그런데 형량은 어찌 되십니까?』
『2년 6월입니다.』
백상충의 그 말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감방 안에 만세운동으로 형을 받은 자들은 6월부터 많아야 1년 6월이었고, 2년형을 받은 자도 없었던 것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손병희 선생과 몇 사람이 3년 선고를 받고 나머지 32인이 1년 6월부터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음을 비추어 볼때 백상충의 형량은 그에 버금갔으므로 놀랄만도 하였다.
『대단하십니다. 어디서 만세운동을 지도하셨는지요?』
상투 쫓은 젊은이가 존경어린 눈빛으로 상충을 보며 물었다.
『울산 지방입니다. 무엇한 말입니다. 여기서 2년을 복역하고 풀려 나온지 달포만에 다시 만세운동에 나섰다보니 형량이 높게 되었을 따름이오.』
백상충의 말에 뒤쪽에서 목소리 걸찍한 자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 그 냄새나는 데를 피해 이쪽으로 오십시오.』하고는, 『앞으로 이 감방에서는 신참 분을 좌상으로 모셔야 하오』하며 다른 수인들에게 일렀다.
백상충이 그냥 앉은자리에 있겠다고 몇 차례 사양했으나, 뒤쪽에서 할 말이 있으니 건너오라고 졸라 그는 자리를 옮겨 앉았다.
김원일 최연석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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