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에 버무리면 김치 맛 좋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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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잘 익은 김장 김치는 상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김치 맛을 내는 20여종의 유산균 중에서도 '류코노스톡'이라는 유산균이 이런 맛을 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이 균이 없거나 숫자가 적으면 김장 김치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류코노스톡이 신맛을 내는 젖산과, 톡 쏘며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탄산을 다른 균에 비해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인공으로 기른 류코노스톡을 김장 김치 담글 때 양념처럼 한꺼번에 듬뿍 집어 넣어 버무리면 어떨까. 김장 김치가 가장 잘 익었을 때의 맛이 금방 나며 그 맛이 오래 간다.

서울대 미생물연구소 정가진 교수는 밥 숟가락 하나(1㎖)에 류코노스톡이 1백만마리 정도가 되게 배양한 유산균 물을 넣어 김치를 담그는 실험을 했다. 담근 김치는 유산균이 잘 자라도록 25도 정도 되는 실내에 반나절 정도 나뒀다. 그러자 류코노스톡은 밥 숟가락 하나에 6천만~7천만마리 꼴로 급속도로 늘어났다. 김치의 산도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0.5~0.8%. 이를 냉장고에 넣으면 유산균의 성장이 둔해져 맛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김치를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유산균으로 김장의 맛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정에서 김치를 담그면 류코노스톡의 수는 처음에 ㎖당 1만마리 정도에서 시작해 김치가 익었을 때 6천만마리 정도로 늘어난다. 그러나 김치의 맛이 들 때까지 오래 걸리며, 그 맛이 오래 가지 않는다. 김치가 시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류코노스톡이 자신이 만든 젖산이 많아지면 죽고, 대신 산패균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젖갈이나 마늘.고춧가루는 유산균으로 맛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는 것. 양념에 붙어 있는 각종 균들이 김치 고유의 맛을 내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고추 등을 깨끗이 닦아 담는 것도 맛좋은 김치를 만드는 비결 중 하나인 셈이다. 또 산지에서 막 가져온 배추나 무를 쓰는 게 좋다. 뽑힌 뒤에도 세포가 살아 있어 호흡을 하는데, 오래된 야채는 세포가 자신의 영양분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양념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백김치나 동치미 등은 유산균 양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거의 실패하지 않고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가 개발한 '유산균으로 김치맛을 조절하는 기술'은 한 식품회사에 이전돼 김치 품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 유산균 음료처럼 김치용 유산균이 페트병에 담겨 팔릴 날도 멀지 않았다. 김치 냉장고 등 냉장용 가전제품이 많이 보급돼 있어 유산균으로 잘 익힌 김치의 장기 보관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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