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변인 감투'엔 꿈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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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최전선의 소총수'로 비유되는 부대변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경향신문은 25일 부대변인들의 세계를 보도했다.

김영선·김희정 한나라당 의원, 김현미 열린우리당 의원,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 이들 여성 정치인은 공통된 경력을 갖고 있다. 정치 신참 시절 정당의 부대변인을 지냈다는 점이다. 김영선 의원과 추전의원은 옛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에서 부대변인으로 재직하며 치열한 '논평 전쟁'을 벌였다. 김현미 의원은 새천년민주당 부대변인을 거쳐 국회에 입성했고, 김희정 의원은 한나라당 부대변인 경력을 바탕으로 '17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란 타이틀을 따냈다.

최근 한나라당이 상근 12명, 비상근 24명 등 부대변인 36명을 무더기로 임명해 화제가 됐다. '매일 돌아가며 논평을 발표해도 한달에 한번 차례가 오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수다. 게다가 무보수다. 상임 2명, 비상임 3명의 부대변인을 두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경우 상임 부대변인에겐 5백만원 정도의 활동비를 지급하지만 한나라당은 상근.비상근을 불문하고 무급직이다.

부대변인들의 출신 분야는 다양하다. 전직 당료.보좌관.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등에다 지방의원, 사업가, 기자, 아나운서, 변호사, 시민단체 출신도 상당수다.

'멀쩡한' 사람들이 왜 사실상의 '자원봉사'에 몰려드는 걸까. 답변은 이렇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지명도를 높일 수 있다."(한나라당 부대변인) "부대변인이라는 일 자체가 정치권 이곳저곳에 인맥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우리당 부대변인). "화려한 스타탄생을 꿈꾸는 정치예비군"들에게 부대변인이 매력적인 이유다.

하지만 '제2의 추미애'나 '제2의 김현미'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한 부대변인은 스스로를 "무명용사 같다"고 자조했다. 부대변인이라고 명함을 박기는 했지만 몇개월째 자기 이름 달린 논평이 언론에 단 한줄도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진짜 대변인'이 국회나 당사에 나오지 않는 휴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마이크 잡고 TV 카메라 앞에 서서 논평하는 기회를 기대해 볼 수 있어서다.

부대변인은 '최일선의 소총수'에 비유될 만큼 거친 일이기도 하다. 당 대 당이 부딪치는 전선에서 때로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을 만큼 치열한 전쟁을 벌여야 한다. 한나라당 이정현 전 부대변인은 "사안마다 각종 논평을 내면서 정부.여당으로부터 10번이나 고소.고발을 당했다"고 했다.

대변인과 호흡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다. '금배지'는 없어도 정치감각만큼은 '의원급'인 부대변인들은 때로 대변인들과 의견이나 일하는 스타일에서 갈등을 빚는다. 특히 대변인들이 재선급 이상이던 예전과 달리 요즘엔 대변인들이 대부분 초선 의원이어서 이런 충돌이 더 잦아졌다고 한다.

정치권 일부에선 '부대변인 홍수'를 보며 "일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논평 한번 안 내는 사람도 많다"고 곱잖은 시선을 보낸다. 일부 부대변인들은 "가끔 개인 업무에 빠지다보면 당의 일에 소홀할 때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부대변인이야말로 정치판의 맨 앞에서 뛰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느냐"(한 의원)는 촌평도 있다.

디지털뉴스 (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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