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법원장은 '수도승적 생활'을 강조했던 선임 대법원장들과 달리 현안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올 2월 관련자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1심을 "사법부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판결"이라고 평가해 재판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고, 최근엔 검사와 변호사를 싸잡아 비판해 이들의 반발을 사는 등 '이용훈식(式) 개혁'은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다.
◆ "현실적 한계 있는 공판중심주의"=이 대법원장은 최근 전국 지방법원을 돌며 "법정에서 모든 진실을 파악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역설했다. 13일 광주 고.지법에서 그는 "2004년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의 조서는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내가 이끌어냈다"며 "(공판중심주의로 가는)법원을 위해 내가 큰 일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대법원장은 조직폭력 사건의 변호를 맡았었다. 최근 논란이 된 '검사의 수사 기록을 집어 던져라' '변호사들이 내는 자료라는 게 상대방을 속이려는 문건' 발언도 공판중심주의 실천을 판사들에게 당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배심제와 참심제를 혼용한 국민참여재판제도 도입 ▶양형 기준의 마련 ▶판사 수의 대폭 증원이 선행됐을 때 공판중심주의가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검찰은 공판중심주의를 위해선 '플리바기닝'(유죄협상제도)과 거짓말하는 참고인을 처벌할 수 있는 '사법방해죄'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현행 제도 아래서 조서 능력을 부정하는 재판을 할 경우 공판중심주의라기보다 '판사중심주의'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 "법적 안정성 우려되는 과거사 정리"=대법원은 3월 유신정권 이후 시국.공안 사건 관련 판결문 5000여 건을 분석해 이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이 대법원장의 과거사 사과에 따른 조치였다. 이후 6개월째 대법원은 과거사 정리를 마무리할지 고심하고 있다. 대법원은 각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가 들어올 경우 과거 재판에 대한 판례를 변경하거나 유신 조치 등에 대한 법안을 통틀어 무효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대법원장이 추구해온 법원의 자정 노력도 순탄하지 않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감찰기구인 '윤리감사관실'을 신설해 자정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올 들어 군산지원 판사들의 비리 의혹사건, 현직 고법부장판사의 법조 비리 연루 사건이 잇따라 터져 법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 '비하성 발언' 해명할 듯=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이 대법원장이 26일 서울중앙지법을 초도 순시하는 자리에서 (검사.변호사 비하성)발언의 표현상 실수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유감의 뜻을 표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대법원장은 23일 평소 친분이 있던 임채정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일부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된 만큼 해명과 유감의 뜻을 표명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