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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푸어'를 정말 돕겠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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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게 아니다. 일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하는데도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다.

주로 저소득.비정규직 근로자 이야기로 들리지만 실제론 범위가 훨씬 넓다. 지난주 중앙일보의 '자영업자의 사계절' 시리즈를 보면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워킹 푸어'로 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말이 좋아 자영업자나 '투잡스(two jobs)'이지 실제론 취로 수준의 수입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중산층에서 탈락한 뒤 극빈층으로 떨어질까 말까 하는 형편이라는 점에서 '벼랑 끝 계층'이다. 아예 극빈층이라면 국가 지원을 받겠지만 이들은 그런 도움에 기댈 수도 없다.

'워킹 푸어'가 급증하고 있다는 경고는 이미 노무현 정부 초기부터 나왔다. 2003년 7월 참여연대의 토론회에선 이들이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로 지목됐다. 또 2005년 6월 당정 워크숍에서도 정세균 당시 원내대표가 '워킹 푸어'의 확대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워킹 푸어'는 자꾸 늘어났다. 정부가 이들을 직접 염두에 두고 내놓은 대표적인 지원책이 2008년 시행 예정인 근로장려세제(EITC)다.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액만큼을 정부가 보전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것도 효과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경제를 점보기에 비유한다면 '워킹 푸어'는 후미에 해당한다. 이륙할 때는 맨 나중에 떠오르고, 착륙할 때는 맨 처음 땅에 닿는다. 즉 호황의 혜택은 가장 늦게 누리는 반면, 불황의 쓴맛은 가장 처음 맛보는 집단이다. EITC는 이들에게 안전벨트는 되겠지만 좌석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티켓은 못 된다.

이런 성격의 대책이 나온 것은 정부가 '워킹 푸어'문제를 양극화 현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복지나 분배 차원의 해법을 찾은 듯하다. 물론 아주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게 무엇일까. 한마디로 더 나은 벌이가 아닐까. 일한 만큼 많이 벌어야 곤궁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아이들 학원도 보내고, 집도 사고, 차도 굴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러려면 역시 경제라는 점보기가 높이 떠야 한다. 경제가 확실히 좋아지면 민생도 좋아진다. 게다가 점보기 후미 좌석의 승객들은 앞좌석에 비해 현 정권이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정치적 고객 아닌가. 인위적 부양은 없다던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요즘 말을 슬슬 바꾸는 걸 보면 점보기의 고도를 좀 더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정부가 그럴 능력이 있느냐다. 최근 경기는 이렇다 할 호황 없이 지루한 부진의 늪에 빠진 양상이다. 점보기의 후미가 땅에 질질 끌려가는 게 연상될 정도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 힘들게 일해도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찌 될까. 이들의 좌절과 절망은 짜증과 불만으로 쌓인다. 개인 문제라면 신세타령하며 소주 몇 병 축내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집단으로 커지면 묵직한 정치사회적 질량을 지니게 된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약한 지표층을 뚫고 분출하는 마그마라고나 할까. 선거나 시위 또는 의외의 이슈를 타고 터져나오는 사회운동 등이 그 분화구가 되기 쉽다. 이미 5월의 지방선거에서 소규모 분화가 있었다. 앞으로는 또 어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종류의 에너지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기술은 야당보다 여당이 더 나아 보인다.

남윤호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