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도 한발짝씩 물러서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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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 보름째로 맞고 있는 KBS사태는 이사회와 방송위원회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나섬과 동시에 사원들이 정부측과 대화를 모색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사회가 채택한 「방송정상화를 위한 결의」는 방송을 우선 정상화하고 사장취임 방해와 성급한 공권력 동원에 사원과 사장이 서로 사과하며,정부는 공권력 동원을 자제할 것등을 제안했다.
한편 방송위는 서기원사장의 즉각적인 퇴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것은 지금까지 정부가 보이고 있는 퇴진불가 방침에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의견으로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KBS경영진과 정부측은 서사장 퇴진요구를 「인사권의 침해」이며 「불법」으로 단정한 반면 방송위는 국가적 불행한 사태를 끝내기 위한 서사장 「개인의 선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중재와 해결방안들이 당사자들에 의해 신중히 검토되고 수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수용되길 바란다.
그러나 이 모든 중재와 절차,검토의 시간적 유예에 앞서 최우선적으로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KBS방송의 무조건 정상화다. 방송을 정상화시켜 놓고 나서도 얼마든지 대화와 협상의 길은 있다고 본다. KBS사원들이 방송에 복귀하는 가장 절실한 명분은 「국민에 대한 의무와 사명」을 방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KBS에 대한 공권력의 사용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장 취임과정에서의 공권력 투입이 너무 성급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듯 이 단계에서 공권력을 투입해 물리적으로 사태를 진압하려 한다면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이사회와 방송위의 중재안이 KBS사원과 정부측에 의해 충분히 검토되고 수용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적 여유는 허용돼야 할 것이다.
또한 작금에 보이고 있는 KBS사원측의 자제와 대화의 자세에 기대를 걸고 싶다. 사원측과 중간간부들은 정부측과 적극적인 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25일 있었던 이른바 「민주 KBS평화행진」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유인물을 살포하는 행위를 삼가고 인도를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모습에서도 우리는 일단 안도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KBS사원들은 자신들이 왜 제작거부라는 극한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그 충정과 의지를 충분히 내보였다고 생각한다. 그 충정과 의지가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나왔다 해도 표현과 관철의 방법은 순리적이어야 하고 국민의 여망과 현실을 외면한 채 분규의 상대를 백안시하는 무리한 방법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이번 KBS사태는 잠잠하던 노동현장에 직접적인 파급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심각하게 배려해야 하겠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하고 노사대립을 화해로 유도해야 할 책무가 있는 언론기관이 오히려 분규와 대립을 충동질하고 증폭시키는데 촉매역할을 한다면 이는 본의가 아니겠거니와 그 피해가 전산업,나아가서는 국가경제와 민생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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