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투잡'을 하고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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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올해 초 우연히 기자의 차를 대리운전했던 정종윤씨한테서 그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특수한 경우이겠거니' 생각했다. 밤새도록 대리운전을 하고는 아침에 잠깐 눈을 붙인 뒤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 서울 광장시장 양복점으로 출근하는 고달픈 삶. 이런 생활을 3년째 매일 해왔는데도 저축은커녕 가게 임대료 내기도 빠듯하다고 했다. <본지 9월 19일자 1, 6면>

그러나 자영업자의 어려운 상황을 취재할수록 정씨의 경우가 그리 특별한 사례가 아님을 실감했다. '자영업자의 사계절' 시리즈가 나간 뒤 많은 자영업자가 기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공구도매업을 한다는 한 독자는 연매출은 수억원이 넘어도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며 살아가기가 갈수록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내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기 싫어 최선을 다해 보지만 힘겹다"며 "정씨의 이야기를 읽고 마치 내 삶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반면 인터넷 댓글 중에는 자영업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도 있었다. 적극적인 변신을 게을리한 채 현실에 안주하다 보니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취업자 수의 30%에 이를 정도로 자영업자가 넘치는 상황에서 "너는 왜 성공한 사람처럼 못 하느냐"는 비난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자영업자가 많아진다. 직장에서 밀려나거나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대개 '생계형' 자영업자가 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가 살기 어려워지는 것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240만 명인 자영업자와 그 가족의 문제이자 우리 경제,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기업이 일자리를 늘려 자영업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늘리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여유 있는 사람들이 국내에서 맘껏 지갑을 열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돈은 위에서 흘러 아래로 내려간다고 하지 않는가.

해외로 나가 돈 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는 커질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책상에 앉아 컨설팅 제공 등 자영업자 대책을 마련한다고 고민하기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처방과 철학을 내놓아야 자영업자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다.

김필규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