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고아 뒷바라지 축복으로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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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아가 된것은 죄가 아니며 가난한 것은 잘못이 아니므로 용기를 가지고 목적을 이루기위해 노력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한평생 독신으로 지내오며 자신의 삶을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데 바친 사회복지법인 마산인애원(경남마산시장군동4가25)대표이사 조수옥여사(76)의 말이다. 그는 45년간의 고아들 뒷바라지에 손마디는 거칠어졌지만 단한번의 후회없이 「희생적 삶」을 추구해왔다.
그가 마산인애원을 설립한 것은 1945년 12월. 경남하동의 기독교집안출신으로 당시는 전도사였다.
『신사참배를 통해 정신개조를 꾀하려는 일제의 정책에 반대해 이를 거부했더니 일제경찰이 나를 투옥시켰어요.』 그래서 40년9월부터 해방되던 45년8월17일까지 옥중생활을 했는데 그경험이 인애원설립동기가 됐다.
『감옥에 있는동안 나쁜짓을 하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무척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출옥을 하면 반드시 어린이보호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요.』 해방된후 그는 만주에서 귀환하는 동포들의 틈에 끼여온 고아들이 길거리에서 병들어 누워있는 것을 보고 구호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빈손이어서 구호사업을 할 돈도 없어 몹시 어려웠지요. 품팔이로 밭일도 하고, 장사도 했으며 안해본 일이 없지요. 당시 군정에서 주는 배급도 유상이어서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면 남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모진 고생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어린것」들이 도망을 칠때에는 『밤새워 통곡해도 가슴이 저려왔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병들어 숨졌던 경우는 없어 고생을 축복으로 여기며 감내해왔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아이는 줄잡아 1천3백여명. 그중에는 은행지점장·의사등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이들도 많다. 특히 진복만씨(미국명 데이비드 진·미국필라델피아주정부 사회국장)가 사회복지지도를 위해 미대표단 임원으로 한국에 나왔던 일을 둘도 없는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경남사회복지 교육원(72년)·경남 종합사회복지관(87년)등을 세우기도한 그는 요즘에는 『나이가 든탓으로 힘이 부쳐』 68명의 원생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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