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절반이 학원비 '차라리 이민 가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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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1일. 학부모의 고통은 더해 간다. 특히'죽음의 트라이 앵글'(내신+수능+논술)로 불리는 2008학년도 새 대입제도가 사교육비 부담을 더 늘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느 분야든 소홀할 수 없는 데다 대학들이 논술 비중을 늘릴 방침이어서 사교육 의존이 높아질 우려가 있어서다.

사교육비는 특히 중산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수입의 절반 정도를 쏟아 부을 정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6월 현재 입시학원 종합반 수강료는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나 올랐다. 전체 교육물가 상승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두 배에 달했다. 종합반 수강료가 이처럼 뛴 것은 1996년 7월(8.7%) 이후 처음이다. 교육부가 사교육비를 잡기는커녕 학부모의 등골만 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교육계는 올해 연간 사교육비가 17조원대로 불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 "학원 안다니면 불안해요"=21일 오후 11시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 대형 버스 20여 대가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을 실어 나른다. 밤마다 대형 버스가 중산층이 몰려있는 목동 아파트단지를 도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강남.평촌 등 학원 밀집 지역도 마찬가지다. 김모(목일고2)군은 "오후 7시부터 학원에서 영어.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며 "일주일에 두 번은 다른 학원에서 논술지도를 받는다"고 말했다. 학교 공부만으론 원하는 대학에 갈 실력을 쌓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모(양정고2)군은 "대입 내신 비중이 50%로 높아져 과외도 받고 있다"며 "일부 친구들은 수백만원짜리 과외도 한다"고 말했다. 목동 14단지 아파트에서 고3 딸을 기다리던 김민순(42)씨는"언제까지 사교육에 매달려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수입 절반을 사교육비로 쓴다"=중견기업 임원인 박진수(49.서울 강남구)씨는"힘들게 번 돈의 절반을 애들 학원비로 쓰는 현실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고3 아들과 중2 딸을 둔 박씨의 수입은 월 600여 만원. 아들 사교육비는 논술(120만원)과 영어.수학(100만원) 등 220만원 이상 든다. 딸의 학원비 91만원(수학.과학 30만원+영어 27만원+바이올린 30만원+내신 체육 4만원)을 합치면 한 달 지출이 311만원이나 된다. 박씨는 사교육비 때문에 아내와도 자주 다툰다고 했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이모(42)씨는 수학 과외비만 월 200만원 든다고 말했다. 이씨는"대학교수인 남편의 월급으로 너무 빠듯하다"며 "차라리 이민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자주한다"고 털어놨다.

사교육비는 중산층 이상이 많이 쓰는 게 현실이다. 통계청의 '2006년 2분기 전국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소득 최상위 10%의 월평균 보충교육비는 31만6000원으로 소득 최하위 10% 계층(3만1000원)의 10.2배나 된다. 지난해 2분기(8배)보다도 확대된 것이다.

◆ 원인이 뭔가=공교육 하향 평준화와 학교선택권 제약, 잦은 입시제도 변경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팀장은 "교사 임용을 사대.교대 출신뿐 아니라 모든 전공분야로 개방해 상시적으로 능력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립형 사립고 등 특색 있는 학교가 적은 것도 문제다. 중앙대 박희봉 교수는 "획일적 평준화로 학생 수준과 능력에 따른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사교육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입제도 정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교육의 종착역은 '대입'이기 때문이다. 대입제도는 평균 4년마다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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