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한국인의 참상 아직도 생생히…/처음 공개된 일제 제2대본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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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땅굴 발파작업등에 강제노동/한인7천명동원 천여명 희생
일본이 제2차대전에서 패망직전 일왕의 임시거처와 전시 최고 사령부인 대본영 구축을 위해 한국인 노무자들을 강제동원,극비리에 건설하던 마쓰시로 (송대) 대본영 내부가 22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군의 「제2 대본영」으로 불리는 마쓰시로 대본영은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44년11월11일부터 공사가 시작된 동경북서쪽 6백km 지점의 나가노(장야)현 나가노시 마쓰시로읍일대 3개 야산에 구축하던 지하호로 당시 현지 경찰과 헌병들조차도 공사사실을 모를만큼 철저히 은폐돼 왔던 곳이다.
태평양전쟁말기 일본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군 수뇌부가 이른바 「본토결전」 태세를 갖추기 위한 배수진으로 마련됐던 이 대본영에는 최소한 한국인 노무자 7천여명이 강제동원돼 1천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날 처음 공개된 대본영 지하갱도안에는 당시 한국인 노무자들의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케하는 낙서ㆍ유류품등이 곳곳에서 발견됐으며 지상에 세운 일왕침실은 완공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총연장 13km의 이 지하호는 높이 3m,폭 3m의 통로가 바둑판처럼 뚫려 있었으며 지질이 단단한 암반이어서 어떠한 공습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 이곳을 공개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본영부근 시노노이 아사히(조정욱) 고교 지하호연구회가 펴낸 조사서와 와다 노보루 (화전 등)의 저서 『송대 대본영』에 따르면 한국인 노무자들은 무학산 지하호부근에 78동,상산 지하호부근에 1백29동 등 모두 2백40여개동의 급조막사 (함바)에 20∼30명씩 나뉘어 기거하면서 거의 유폐된 상태에서 기계ㆍ노예처럼 혹사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당시의 증언자나 자료가 거의없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건설현장에 동원됐다가 해방이후 지금까지 대본영부근에 살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인 최태소씨(68ㆍ본적 경남 협천군 가야면)는 이날 현지 취재에 동행,자신이 직접 굴착했던 곳을 일일이 기억해내며 참담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최씨등 한국인 노무자들이 주로 맡았던 일은 하루 12시간씩 맨발ㆍ맨손으로 낙반 가능성이 있는 곳이나 막장등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최씨는 『50∼60대 한국인 노무자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중노동이나 사고로 숨졌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일본인 작업반장들은 1개조 4명으로 점조직처럼 구성된 작업반원들이 다른조 사람들과는 물론 반원들끼리도 사담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키고 이를 어겼을 경우 몽둥이ㆍ죽도등으로 무참히 구타했다』고 말했다.
지난 87년 종전 42주년을 기념해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다룬 『머나먼 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하루카 나루타비씨 (50ㆍ여)는 이날 현장에 동행,『4세때인 44년10월초 부모를 따라 마쓰시로로 이사했다』며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하루 평균 한국인 노무자 5∼6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장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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