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쿠데타의 망령을 되살리자는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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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나라당 대변인이 "태국 쿠데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며 현 정권을 공격했다. 그는 태국 총리를 언급하면서 "여러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고까지 했다. 한국정치에서 종종 정당 대변인은 오히려 유해한 존재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경우는 무슨 변명을 해도 용서받지 못할 발언이다.

한국의 헌정사엔 쿠데타가 두 차례 있었다. 1961년 5.16과 1979년 12.12다. 5.16 쿠데타가 그 이후 박정희의 치적으로 이어지기는 했으나 군부의 무력적인 권력 개입으로 헌정의 기본질서가 유린됐다는 본질엔 변함이 없다. 특히 12.12는 광주 민주화운동과 유혈진압을 유발하게 하여 이 나라의 부끄러운 정치사를 기록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아직도 12.12의 부담 속에서 살고 있다. 극렬 좌파가 탄생한 것도 이러한 군사 쿠데타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이 나라는 그러한 역사를 극복하고 이제는 손색없는 민주국가의 반열에 들어섰다. 근 반세기의 축적을 통해 민주화가 열매를 맺은 것이다. 누가 뭐래도 민주적 절차, 헌정질서는 흔들릴 수 없는 우리의 자산이며 가치가 됐다.

어느 시대에나 정치적 불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불만이 법과 제도를 통해 해결되지 못하고 물리력이나 강압으로 해결될 경우 그때는 시원할지 몰라도 두고두고 부담으로 돌아온다.

태국의 군사 쿠데타를 보고 인터넷 댓글 등에서 한국의 상황, 특히 이 정권의 실정에 대한 염증에서 여러 얘기가 떠다니고 있다. 일부에서는 공공연히 쿠데타를 선동하는 듯한 언행도 있었다. 이런 발언들은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잘못된 일이다. 다시 군사 쿠데타를 해서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이런 얘기들이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민주적 뿌리가 아직 취약하다는 증거다.

우리가 이룩한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허무는 발언은 있어서는 안 된다. 바로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다. 제1 야당 대변인의 이번 발언을 무심코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