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특별단속 딱 70일 만에 환치기로 새나간 돈 1조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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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치기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수법도 다양화하고 있다. 환치기는 정식으로 환전하지 않고 중개인을 동원해 불법으로 달러 등 외화 자금을 결제하는 수법. 주로 범죄나 재산 도피 등 불법 자금의 이동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엔 무의탁 노인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받은 후원금을 환치기 방식으로 해외로 빼돌리는가 하면 탈북자.주부.보따리상, 심지어 아르바이트 학생을 환치기에 이용하는 등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관세청은 올 7월 1일부터 지난 10일까지 특별단속을 한 결과 114건, 1조1090억원 규모의 환치기를 적발했다고 21일 밝혔다.

관세청 관계자는 "환치기가 마약.테러.탈세.자금세탁 등에 활용되고 있다"며 "불법 외환거래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00년부터 올 8월까지 적발된 재산도피(64건) 가운데 48%(31건)가 환치기를 통해 자금을 이동했다.

◆후원금 해외 도피=무의탁 노인을 위한 요양원인 'S요양원'을 운영하는 Y씨(65)는 시청.법원.학교.자선단체 등으로부터 6년간 3000여 회에 걸쳐 7억원 상당의 후원금을 모았다. Y씨는 이 가운데 6억원을 본인과 장인 명의의 36개 예금계좌를 통해 입출금을 반복한 뒤 국내 환치기 중개인의 계좌에 입금했다. Y씨는 대리인을 통해 중국 옌지(延吉)에서 한국의 중개업자와 동업을 하는 중개업자로부터 6억원 상당의 위안화를 받아 이를 중국 내 3058평 규모의 최고급 실버타운 건설에 썼다.

◆탈북자.주부 명의까지 동원=조선족 C씨(54)는 남편과 딸.사위를 한국에 보내 탈북자.택시기사.주부 등 130여 명 명의의 환치기 계좌 233개를 개설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중국으로 자금을 보내려는 사람을 모집해 한국 계좌에 원화를 넣게 한 뒤 중국에 가서 C씨 계좌로부터 위안화로 찾을 수 있게 했다. C씨가 2000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불법 송금한 건수는 25만8000회 5800억원에 달한다. C씨는 불법 송금할 때 명의를 대여해 주면 1인당 4만원, 계좌 개설을 해주면 1만원씩 지급했다.

◆외화 빼돌려 해외 골프장 지분 취득=국내외 골프.콘도.회원권의 매매.분양 등을 대행하는 '○○골프클럽'대표 W씨(37)는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회사와 80억원 규모의 '주주권리 양도계약'을 했다. W씨는 관련법 등으로 자금을 가져가기 어렵게 되자 환치기 중개인에게 22회에 걸쳐 약 7억원을 입금한 뒤 중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회사 직원 계좌로 위안화를 지급받아 계약금과 중도금을 지급하는 데 썼다.

◆아르바이트 학생 고용도=한국 환전상 K씨(49)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일본에서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비디오가게.수퍼마켓 등을 찾아다니며 한국에 송금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모집했다. K씨는 재일동포로부터 받은 엔화를 가족과 아르바이트 학생 등을 통해 한국으로 휴대 반입하도록 했다. K씨는 이 돈을 한국에서 환전해 일본의 송금자가 지정하는 한국인에게 인터넷 뱅킹을 통해 지급했다. K씨가 알선한 외환만 2671억원어치였다.

김창규 기자

◆환치기란=환전 절차 없이 '화폐를 바꿔친다'는 뜻에서 환치기라고 한다. 두 사람만 공모하면 은행을 통해 외환을 주고받지 않고도 각각의 내국 거래만으로 송금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거래 내역이 잘 노출되지 않고 환전 수수료도 내지 않기 때문에 불법 자금의 이동을 원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주로 관세포탈이나 재산도피, 자금세탁 등에 악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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