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타산으론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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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거여」에 맞설 「대야」의 필요성이 절실한 데도 야권 통합노력이 지지부진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민자당이 정보공작정치니,선거 폭력이니 하는 구태를 재연하고 경제난국 등 국정의 여러 급한 문제에서 능력의 한계를 보이는데도 이를 감시ㆍ질타하고 대안을 활발히 제시할 수 있는 강력한 야당세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원내 70석을 가진 평민당은 제1야당이라고 하지만 독자적으로는 국회 소집권조차 갖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지역당의 한계에 빠져있으며 가칭 민주당은 지난번 보궐선거에서 기세를 올리긴 했지만 아직은 미미한 세력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국적 대표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새로운 국민정당으로서의 야당 출현은 시대의 요청이자 국민의 여망이다. 평민ㆍ민주당 역시 이런 점을 모를리 없다. 그러나 실제 양당이 통합논의에서 취해온 자세를 보면 이런 요청에 대국적으로 부응하기 보다는 정치적 타산에만 매달려 입으로는 통합원칙을 말하면서 행동은 통합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평민당은 제1야당의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고,민주당은 비호남지역의 주도야당으로 발돋움하는 데만 골몰하는 인상이다.
이번에 다시 평민당이 내부의 서명운동 등을 계기로 전당대회를 연기하면서 통합 교섭에 나서기로 하고 민주당도 여기에 긍정반응을 보이긴 하지만 이번 경우 역시 양측에 얼마만큼 진심이 담겨있는 지는 의문이다.
양당 통합이 가능하자면 우선 평민당이 기득권을 과감히 양보한다는 자세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비록 70석의 의석을 갖고 있지만 김대중총재의 「1인당」 또는 「호남지역당」이란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당의 지도체제와 당권지분에 있어 대폭 양보가 불가피하다. 또 가칭 민주당 역시 영남당 하나를 우선 만들어 놓고 보자는 자세로 나가서는 안될 일이다.
다시 호남야당과 영남야당으로 갈라서면 지역갈등을 심화시키고 서로 지역적인 기득권에 안주하게 됨으로써 야권통합의 길은 더욱 멀어질 뿐이다. 따라서 양측이 통합을 실현하자면 평민당과 김대중총재의 과감한 양보와 함께 민주당측이 독자 창당을 최대한 늦추면서 새로 진지한 통합 교섭을 벌여야 한다.
우리는 「거여」에 맞설 「대야」가 되자면 평민ㆍ민주당의 통합만 갖고서는 부족하다고 본다. 양측이 합쳐봐야 의석으로도 80석이 못되고 인적 자원이나 지역적 기반이나 민자당에 비해서는 훨씬 열세를 면치 못한다. 양당이 통합하고도 계속 각계의 새로운 인물과 세력을 과감히 영입하고 당체제를 쇄신해 나가야 차츰 「대야」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대야」라야 집권대체세력이 될 수 있고 야당정치인들의 장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작 두당의 통합은 「대야」로 가는 첫 단계에 불과한데 여기서부터 소승적 이해타산으로 좌절한다면 야당의 장래는 지극히 어둡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야당 정치인들의 과감한 인식전환을 촉구하며,특히 김대중총재의 이니셔티브를 기대하면서 그가 21일 내놓겠다는 「획기적 방안」을 주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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