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기류속의 민족주의/리투아니아가 제기한 첫 시련(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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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월말에 정상회담을 갖기로 일정을 마련하는등 최근 수개월동안 순조롭게 발전되어온 미소관계가 리투아니아 문제로 주춤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리투아니아가 소연방으로부터의 분리ㆍ독립을 선언한 뒤 중앙정부가 취하고 있는 경제제재,무력사용가능성등의 압박에 대한 미국측의 공개적인 견제노력에 소련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동구에서의 시민혁명,베를린장벽의 붕괴,통독작업 등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개혁작업과 맞물려 진행되며 다민족 국가인 소연방 안에서도 민족독립의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경우 히틀러와 스탈린의 밀약에 의해 소련에 강제 합병됐다는 점에서 그 요구의 정당성ㆍ불가피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소련 정부도 이미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3국 합병의 불법성을 시인한 바 있고 이들 국가가 소연방에서의 탈퇴를 원할경우 이를 허용하는 법절차를 마련해 놓고 있다.
특히 우리의 입장에서 볼때 민족자결이라는 대전제에서 리투아니아건,어떤 다른 약소민족이건 독립요구는 정당한 것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그러한 요구를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리투아니아의 경우 이 문제 하나만 놓고 볼때 그들에게는 절박하고 양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절박성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가능하게 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혁정책이 좌초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그렇지 않아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많은 도전에 직면해있다. 동구의 바르샤바조약 와해상태등 소련의 외교적 희생에 뒤따라야할 과실은 아직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경제사정도 악화돼 있는 상태다.
개혁정책 추구이래 중앙아시아를 비롯,그동안 폭발해온 민족분쟁들은 국내의 혼란만 가져왔다는 비판으로 고르바초프의 입지를 어렵게 해왔다. 중앙의 통제 약화,권위 상실등의 이유로 국내 반대세력의 비판을 받고 있는 고르바초프로서는 리투아니아 문제가 그의 정치생명이 걸린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등 서방국가들은 리투아니아 국민들의 요구가 정당함을 인정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주저해왔다.
이제 간신히 정치권력과 정치구조를 개편,그의 개혁를 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한 상태에서 그의 입장이 약화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시류가 국제 다원화상태로 가고 있지만 미소관계는 아직도 세계질서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미소간에 합의되고 있는 군축문제,통독문제,한반도를 비롯한 지역문제등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순조롭게 추진되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는데 리투아니아문제가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사자를 포함,미소가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력사용의 길까지 가지 않도록 소련중앙정부와 리투아니아의 타협노력도 필요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도 그러한 분위기조성에 협조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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