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헝가리 반정부 시위 격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가 반정부 소요 사태로 큰 혼란에 빠졌다. 총리 퇴진을 외치는 시위대와 진압경찰이 충돌해 폭력 소요 사태로 발전했다. 현장을 지켜본 한 시민은 "1956년 대소(對蘇) 항쟁 이후 이런 소요 사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페렌츠 주르차니(44.사진) 총리는 "(시위대의) 난동은 국가에 대한 공격"이라며 "주동자를 엄벌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확산되는 반정부 시위=19일 새벽 시위대는 이틀째 유리병과 보도블록을 깨서 만든 돌로 투석전을 벌였다.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맞섰다. 일부 과격 시위대는 국영방송국 건물에 난입했고 주차된 자동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150여 명이 다쳤다.

이날 저녁에도 1만5000여 명의 시위대가 국회 앞에 모여 구호를 외치며 자정이 넘도록 시위를 벌였다. 20일 새벽 시위대는 상가 유리창을 부수고 지방선거 벽보를 찢는 등 또다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 공영 ZDF 방송은 "시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의 신변이 위험할 정도로 치안이 나쁘진 않다"고 전했다. 반정부 시위는 미슈콜츠.베케슈처버.니레지하저 등 헝가리의 지방 중소도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 시위 원인은=주르차니 총리의 육성 녹음 테이프 유출 사건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테이프에는 그가 올 5월 총선이 끝난 지 한 달 후 여당의원들이 참석한 원내모임에서 발언한 내용이 담겼다. 당시 그는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난 2년간 거짓말만 해왔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 국민에게 그럴 듯하게 경제지표를 속였다는 고백이었다. 누군가 몰래 녹음한 이 테이프를 헝가리 국영라디오가 입수해 17일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여론은 벌집 쑤신 듯 들끓었다. 파이낸셜타임스 독일판은 "이번 시위의 근본 원인은 집권 사회당(MSZP) 연립정부가 총선 후 추진해온 각종 개혁 조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르차니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그동안 각종 복지혜택에 칼을 들이댔다.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미뤄온 유로화 가입을 위한 조치였다. 의료보조금을 삭감했고 무료였던 대학교육에 수업료를 도입했다. 세금도 줄줄이 인상했다. 서민 가계에 부담을 주는 부가가치세를 올리고 각종 세금을 신설했다. 이러던 차에 주르차니 총리의'거짓말'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자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폭력사태로 비화되고 말았다.

헝가리 경찰이 20일 페렌츠 주르차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 17일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헝가리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부다페스트 AP=연합뉴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