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가 본 아베의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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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20일 도쿄의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승리가 확정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선거인단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가 사귀는 친구를 보면 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그의 실체를 아는 데는 그가 사표(師表)로 삼는 인물을 보면 도움이 된다. 어제 일본 자민당 총재에 선출돼 26일 총리가 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존경하는 인물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다.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조(東條) 내각의 상공대신을 지낸 A급 전범으로 종전 후 총리를 지냈다. 아베는 1960년의 어린 시절 안보 반대 시위대에 포위된 외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아름다운 일본으로'라는 책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어린 내 눈에 외할아버지는 나라의 장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만 생각하는 진지한 정치가로 비쳤다." 아베는 외조부한테서 애국주의를 배웠다.

요시다 쇼인은 에도(江戶) 막부 말년 조슈(長州)의 하기(萩)에 쇼카 손주쿠(松下村塾)라는 학교를 세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포함한 메이지유신의 주도세력을 길러낸 혁명 사상가다. 조슈는 아베의 고향이요, 선거구가 있는 야마구치(山口)의 옛 이름이다. 아베는 요시다 쇼인이 즐겨 인용한 맹자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스스로 반성해 내가 옳다면 천만 명이 반대해도 나의 길을 간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아베는 정치가를 '싸우지 않는 정치가'와 '싸우는 정치가'로 분류하고, 자신은 싸우는 정치가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그는 요시다 쇼인이라는 실천적인 혁명 사상가한테서 싸우는 정치가 상(像)을 배웠다.

지금부터 우리는 애국주의로 무장한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일으킬 많은 파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는 정식 군대를 보유하기 위한 개헌과 패전의 열등감을 털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프라이드를 갖는 애국주의적 교육 개혁에 정력을 쏟을 것이다. 정식 군대를 갖고 세계무대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위상을 가진 스트롱 재팬, 일본인이 희망을 갖고 사랑하는 나라가 아베의 아름다운 일본이다. 이웃나라에는 무서운 일본이다.

아베 정부의 대외적인 노선은 예측 가능하다. 우선 친미 일변도의 고이즈미 총리가 망가뜨려 놓은 한.일, 일.중 관계 복원에 착수할 것이다. 그는 방대한 소비시장을 가진 중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일본이 재무장함으로써 군사대국으로 부상할 중국을 견제하는 태세를 갖추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우리의 걱정은 그의 강경한 대북한 정책이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면 북한의 미사일 시설을 선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이미 대북 압박 강화를 시작했다. 2002년 고이즈미와 함께 평양에 가 북.일 교섭을 '감시'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일본인 납치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쏟아왔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새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 보수.우익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런 겉모습만 보면 아베 시대 동북아 국제정치와 한.일 관계의 전망은 어두워만 보인다. 그러나 일본은 지구상에 홀로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다. 국회 의석 3분의 2를 필요로 하는 개헌의 조기 실현은 쉽지 않다. 교육개혁도 국가주의 교육이라는 강력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새 역사 교과서 보급도 일본인의 컨센서스는 아니다.

아베 총리의 등장이 한.일 관계에 새로운 도전인지, 아니면 기회인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2년 전 독도 사태 때처럼 대통령부터 전략도 없이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지금처럼 대북 제재는 안 된다고 북한을 비호만 한다는 인상을 주면 한국은 미국과 일본이 밀착하고, 중국과 일본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모습을 뒷전에서 바라보는 동북아의 외톨이가 된다. 아베는 한.일관계 개선의 의지를 거듭 밝혔다. 고이즈미를 향해 닫아버린 마음을 열고 아베 상대의 맞춤형 외교를 해야 한다. 그가 야스쿠니 참배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 자체가 한국과 중국에 대한 배려다. 우리가 먼저 포괄적 해결 방안을 내는 능동적인(Proactive) 접근이 절실하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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