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술이 가까워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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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일 서울 종로의 한 사주카페에서 20대 여성 역술인이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타로 점을 치고 있다. 양영석 인턴기자

최수미(26.여)씨는 소위 잘나가는 젊은 역술인이다. 평일에는 이벤트 회사 소속으로 호프집을 돌며 타로점을 봐 주고, 주말이면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 거리에서 간이 역술원의 '원장'이 된다. 바로 옆에 세 곳의 역술원이 있지만 유독 최씨의 가게에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최씨는 "손님이 주로 20대 초.중반의 여성이라 세대차 없이 상대 입장에서 편안하게 대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6개월간 이대 앞을 비롯한 광화문 교보문고나 종로 일대에 천막을 치고 영업하는 간이 역술원이 늘고 있다. 영화관에서는 상영 시간을 기다리는 사이 잠깐 짬을 내 운을 점쳐 보는 모습이 일상화됐다.

특히 과거 '백발에 안경 쓴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벗고 20, 30대 젊은 역술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독학이나 학원 교습을 통해 이론을 익힌 뒤 '거리의 상담사'로 나선다. 20, 30대 젊은 역술인 20여 명은 매주 목요일 신촌의 카페에 모여 점성술 스터디를 하며 '내공'을 키우기도 한다.

경력도 다양하다. 서울 마포구의 한 극장에서 타로점을 봐 주는 유문영(38.여)씨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이다. 유씨는 "물리학이나 수학과 마찬가지로 역술도 공부를 할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하루 20여 명의 손님이 유씨에게 운을 점치고 돌아간다. 손금 2000원, 타로 3000원, 사주 5000원 등 저렴한 가격도 이들의 가장 큰 무기다.

이처럼 젊은 역술인이 늘어나는 반면 국내 최대 점성촌(占星村)인 미아리 일대는 점차 쇠락하고 있다. 30여 년간 미아리에서 역술원을 운영해온 전용숙(50.여)씨는 "인터넷과 젊은 역술인들 때문에 미아리 일대 역술원은 한 달에 20만원 벌기도 벅차다"며 "이곳 대부분의 역술인이 생활보호대상자"라고 말했다. 한때 200여 곳의 역술원이 밀집해 있던 미아리 일대는 외환위기 이후 줄어들다가 현재 70여 곳으로 쪼그라든 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신세대 역술인 왜 늘어나나=우선 손금.사주.타로점 등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개선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젊은 층이 뛰어들기에 부담이 없어진 것이다. 이대 앞 사주 카페에서 일하는 김경태(39)씨는 "인터넷이 활성화된 후 관련 지식을 쉽게 습득할 수 있고 접근이 쉬워지면서 일반인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진입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미아리에서 40여 년간 역술원을 운영해온 홍수성(66)씨는 "예전에는 막연히 신내림을 받아야만 무속인이나 역술인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무속과 달리 역술을 학문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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