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 충청도 아줌니 어릴 적 실수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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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류 … 지가 그랬슈

신정자 지음
한솜

우리 나이로 오십인 충청도 아줌마가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에서 짐작 가듯이 주로 실수담을 털어놓는데, 그것이 구수한 사투리와 어우러져 배꼽을 잡게 합니다. 사람이 웃다 웃다 보면 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잖습니까. 꼭 그 경지까지 읽는 이를 몰아갑니다.

초등학교 시절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던 신체검사 이야기입니다. "날마다 고양이 세수허듯 겨우 얼굴에만 수건으로 쓱싹 허고 마는디… 바상 걸렸슈." 검사 전날 집에 돌아와 커다란 고무통에 물을 채워 넣고 들어앉아 때 불리고 엄니가 매운 손으로 씻깁니다. "워찌나 박박 문질러 대는지…계모가 따로 웁당께. 증말 이러다 지 껍데기 홀라당 다 뻿겨지구 말지" 싶드라나요. 아프다고 요리 조리 몸을 빼 보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도 아니건만 "철썩! 철썩" 물고문이 따로 없는데 엄니는 "까마귀가 성님하고 덤비겄다. 이누무 지지배야~."

겨울철 썰매 타다가 산에서 삭달 가지를 주워다가 불을 피우고는 젖은 양말을 말리는데 "발바닥이 뜨듯헌 게 기분 그만유. 헌디, 으쩌까~ 잠시 방심헌 사이 불이란 녀석이 '불하군 철천지 앙숙인 나이롱 양말'을 습격혀 초토화시키구 말았슈. 우쩜 좋대유. 지 엄니헌티 죽었슈. 그류 지가 그랬슈"

학생 수가 되어야 분교를 만들어 준다 해서 두 살 일찍 언니와 초등학교 입학해서는 옥수수죽에 옥시시빵 먹는 재미로 다닌 이야기, 숙제로 받은 쥐꼬리 5개를 마련하느라 땀 뺀 일, 여름날 하루 아이스께끼 장사해서 번 돈으로 집에 새끼줄에 꿰인 꽁치 8마리를 사가 '밥값' 한 무용담 등이 죽 나옵니다. 지나가는 미군 지프를 "할로~ 기브미"하며 뒤쫓다가 '미루꾸'를 못 받은 날에는 팔을 쭉 뻗으며 "아나~ 쑥떡"을 먹이던 이야기도 있네요.

요즘 아이들에겐 별나라 이야기 같겠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던 그 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젖은 낙엽 태울 때 모락모락 올라오는 매캐한 연기처럼 눈물 나면서도 그리운 냄새를 피우는 그런 추억들이 가득합니다. '시골기차'라는 인터넷 동호회에 올린 글을 모았다는데 첫 번째 이야기라는 걸 보면 글이 계속 이어지고 또 책으로 계속 엮어질 모양입니다. 지은이는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기억이라지만 글의 향기는 짙고 오래갑니다.

"내가 소싯적에는 말이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늙어가는 징조라고들 하지요. 그렇지만 아이들 붙잡고 엄마 아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러면서 그 시절 당신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것도 자녀교육의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러긴 쉽지 않으니 이런 책, 집안 어디 아이들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두면 어떨까 합니다. 그류…지가 권했슈.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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