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의 제기능 살리는 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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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앙노동위원회 및 각 시ㆍ도 지방노동위원회의 근로자 위원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그동안 각급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에게 유리한 편파적 판정을 해왔으며,특히 최근 노조 전임자는 휴직처리돼야 하며 임금지급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정한 데 대한 항의로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밝히고 있다.
법적으로는 근로자 위원들의 출석없이도 노동위원회가 기능할 수 있으나 노동위원회의 설치목적에 비추어 볼때 근로자 위원들의 출석없는 노동위원회는 실질적으로 마비상태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노조 전임자의 문제 자체는 입장과 시각에 따라 충분히 쟁점이 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보지만 우리가 관심갖는 것은 그 이전에 과연 현재의 노동위원회가 노동위원회법이 명시하고 있는대로 「노동행정의 민주화」와 「노사관계의 공정한 조절」을 위해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노동위원회는 설치목적을 위해서는 거의 기능을 못해 온 유명무실한 조직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은 지난해 전국 14개 노동위원회가 쟁의발생신고를 받아 알선 및 조정을 성립시킨 비율이 각각 9%밖에 안된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무엇이 노동위원회의 기능을 이렇듯 무력화했는가. 그것은 그동안의 노사 갈등이 주로 힘겨루기로 치달아 온데도 원인이 없지는 않으나 기본적으로는 노동위원회의 조직과 법내용이 원천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현재 각급 노동위원회는 근로자ㆍ사용자ㆍ공익위원이 각각 동수로 구성돼 모든 사항을 과반수로 의결하게 되어 있다. 근로자와 사용자측을 대립적으로 본다면 실질적인 의결권을 쥔 쪽은 공익위원이 된다.
그러나 이들 공익위원은 3급이상 공무원출신,판ㆍ검사 및 변호사,대학교수,노동관계업무 종사자중 노동부장관이 자격이 있다고 인정한 자 중에서 대통령이나 노동부장관이 위촉하게 되어 있어 근로자측으로부터 그 출발부터 중립성을 의심받아 왔다. 더구나 그 의심이 단지 의심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난 63년 처음 설치된 이래 지금까지의 처리결과들은 그것을 사실로 확인시켜주어 왔다.
이번 사태는 그 직접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제 노동위원회도 새롭게 탈바꿈할 시점이 되었음을 일깨워 준다.
노사간의 갈등을 합리적ㆍ법적으로 해결하는 관행을 정착시키려면 우선 분쟁의 조정기구부터 엄격한 중립성을 유지해 권위를 확립해야 한다.
분쟁의 조정기구가 사용자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한 결정을 자주 내리는 것이 얼핏 생각하기에는 사용자측에 이익이 될 것같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노사갈등을 심화시키고 물리력을 동원해야 하는,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한 사태를 빚어내는 것이다.
만약 일부 공익위원이나 법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이나 개정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위원회가 중립성을 확보하지 않는 한 기능은 활성화될 수 없고 설립목적인 「노동행정의 민주화」와 「노사관계의 공정한 조절」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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