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세 자살」이 보내는 경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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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집세를 마련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두달 동안 15명이 잠잘 곳을 마련할 수 없음을 비관,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론 과거에도 이같은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산업사회의 진전과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이 가속되면서 잠잘 곳을 마련하는 문제는 집 없는 영세서민들의 생활에 최대의 위협이 돼 왔으며 그중에는 자살로 현실을 도피하려는 사람들이 나오곤 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전세값 비관자살 현상은 과거와는 양상을 달리하는 것이며,단순히 경쟁사회가 빚어낸 낙오자의 문제로만 취급할 수 없는 심각한 경고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증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틀에 구조적 결함이 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주택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거나 태만했다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주택 2백만호 건설계획이나 토지공개념 관련 입법등 부동산대책에 기울인 노력은 그 나름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10일 자살한 어느 가장의 유서에서도 지적했듯이 정치하는 자,경제를 담당하는 자들이 지혜가 모자라 우를 범함으로써 문제해결에 접근하기는 커녕 오히려 가난한 자의 목을 죄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마침 정부는 부동산투기억제 강화책을 마련,금명간 그 내용을 발표할 예정인 모양이다.
새 경제팀이 금융실명제를 연기하는데 따르는 일부 국민들의 불만을 보상하는 뜻으로 마련한다는 이번 투기억제대책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주택문제에 어느정도 시원한 돌파구를 제시해줄지는 아직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들리는 말로는 부동산투기 혐의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특별입법을 하는 선에 그치리란 얘기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번 대책도 또 한차례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주는데 그칠 공산이 크다.
주거문제가 이미 생존의 문제로 바뀌고 있는데 수없이 되풀이 돼 온 상습 투기꾼에 대한 분양제한이나 정부공사 입찰 배제문제 등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든다는 것은 격화소양의 감이 짙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지나치게 투기억제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주택부족에 있으며 따라서 대책은 주택공급의 확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부동산투기가 문제가 되는 것도 그것이 서민의 내집마련에 장애가 되고 사업하는 사람이 필요한 공장부지를 제대로 마련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동산투기와 지가의 상승은 유한한 토지와 늘어나는 수요를 감안할 때 근본적인 대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정이 그렇다면 주택문제해결을 투기억제 쪽에서만 찾으려 들지 말고 온 국민에게 최소한 잠자는 문제만은 해결해 준다는 차원에서,그리고 사업하는 사람이 필요한 공장부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택지의 공급을 늘리고 주택과 공장부지 실수요자에게 우선순위를 주며 세제금융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등 방법은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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