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임성훈 노래, 아들 임희택이 리메이크 … 부전자전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시대와 장르는 달라도 '시골길'의 정서는 같다

그는 스스로 "자식 복이 많은 사람"이라 했다. 두 아들이 자신의 피를 반씩 이어받아 장남은 방송인, 차남은 가수가 됐기 때문이다. 장남 혁택(29)씨는 SBS 예능국 PD로 일하고 있고, 차남 희택(27.예명 테이크)씨는 힙합듀오 '사이드 비(SIDE B)'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들이자 까마득한 후배 가수인 희택씨와 함께 인터뷰 자리에 나온 임씨는 "작은 방송국을 차려 장남이 연출한 프로그램에 내가 MC를 보고, 차남을 출연시키는 게 꿈"이라고 농담 섞인 자식 자랑을 했다. 희택씨는 최근 내놓은 2집 앨범에서 아버지 임씨가 부른 '시골길'을 힙합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임성훈씨가 1976년 TBC 방송가요대상 남자신인가수상을 받았던 바로 그 곡이다.

희택씨가 '시골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2집 앨범 준비를 하던 지난해 말. 우연히 찾아낸 아버지의 색 바랜 LP판을 들으며 따뜻함을 느꼈다고 한다.

"찌직거리는 잡음도 정감 있게 들렸고, 반주는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았어요. 아버지 노래를 한 곡 샘플링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장 느낌이 좋은 '시골길'을 골랐습니다."

아버지 임씨에게 음원권리자로서 리메이크곡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부탁했다.

"내가 다시 불러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옛 음원을 사용하길 잘한 것 같아요. 지금 목소리보다는 예전 20대 목소리가 쨍쨍하니까요.(웃음) 개인적으로 감회가 새롭고, 옛 노래에 현대적 감각을 잘 덧칠했더군요. 특히 핵심 부분만 따다 쓴 것은 잘한 선택입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장르도 스탠더드 가요에서 힙합으로 바뀌었지만 '시골길'의 메시지는 똑같다. "당시 시골길은 옆에 논밭이 있는 정감 어린 길을 의미했죠. 노래를 불렀던 70년대 중반만 해도 그런 길이 많이 없어졌지만, 시골길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을 의미합니다."(임성훈)

"제가 재해석한 시골길도 잊혀져 가는 옛것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상징하죠. 아버지 세대에서 그 시골길은 아스팔트 길로 바뀌고, 우리 세대에서 그 길은 주차장으로 변했지만 추억과 향수는 늘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거든요."(임희택)

희택씨는 숨겨왔던 에피소드 하나를 아버지에게 털어놓는다.

"아버지, 뮤직비디오에 우리 가족의 옛 모습이 담겨있잖아요. 새벽에 퇴근한 형이 제 방에 들어왔다가 그 뮤비 가편집본을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아버지 노래를 동생이 다시 부르고, 뮤비에 자기 어릴 적 모습이 나오니까 감동했나 봐요."

순간 임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더니 슬쩍 분위기 반전용 멘트를 던진다. "그 녀석 방송국에서 자주 마주치는데, 남들이 볼까봐 손을 아래로 내려서 인사한답니다. 그리고 저는 연대 출신인데, 녀석은 고대를 나와 연고전 할 때는 집안 공기가 싸늘해집니다.(웃음)"

#아들아, 가수의 길은 기분 좋은 늪이다

임씨는 아들 희택씨가 가수의 길로 접어드는 걸 걱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만 봤다. 가수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가수보다 MC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수의 길을 포기했다.

"여기까지가 가수로서 내 한계다라고 생각하고 MC의 길을 택했습니다. 희택이가 음악 하는 걸 말린 적은 없지만, 사실 제 풀에 지쳐 그만두기를 바랐었죠. 아들 공연에 한 번도 안 갔으니 서운할 만도 할 겁니다."

하지만 '음악이란 늪'에 빠진 이상 헤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임씨는 잘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록밴드로 음악을 시작한 아들은 98년 언더그라운드 힙합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버지의 옛날 기타를 뜯으며 음악의 꿈을 키워갔어요. 관객 세 명 앞에서 공연하기도 했지만, 마냥 음악이 좋았어요. 음악을 유명해지거나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다면 진작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했겠죠. 제 힘으로 정상에 올라가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서운한 것 전혀 없고, 이제는 후배가수로서 조언도 받고 싶어요."

이왕이면 아들이 발라드를 하길 바랐던 임씨는 요즘은 힙합에도 귀를 열어놓는다. 괜찮은 외국 힙합을 들으면 참고하라며 휴대전화로 알려줄 정도로 아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선배가수로서 볼 때 희택이는 특징 있는 창법이 있어요. 그걸 계속 가져가면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원조 동안'으로 유명한 임씨에게 동안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었다.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즐겁게 하면 나이가 덜 들어 보입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할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고."

그러면서 희택씨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너도 음악이란 늪에 빠진 이상 즐겁게 해야 해. 최고의 가수보다는 행복한 가수가 되길 바란다. 그래야 아빠의 동안도 물려받지 않겠니?"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