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특공대론 안된다/최철주 경제부장(데스크의 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쟁에서는 예외없이 특공대가 조직된다. 특히 가장 위기적 상황에 몰렸을 때는 적의 심장부에 결사대를 투입해 장애물을 제거토록 한다. 그같은 작전을 성공 시키기 위해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채택한다. 서양인들은 때로는 독특한 기능을 지닌 죄수들을 특공대로 편성해 문제를 해결한다.
어느나라 어느 체제에서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할 필요가 있을때 각료들을 바꾸고 좀더 참신한 정책을 내세우는 데 골몰한다.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져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든가,아니면 얼토당토 않은 사건이 일어나 경제를 혼란시킬 때 정부는 머리를 싸매고 위기대책을 마련한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면 대단한 정책들이 나오지 않는다. 경제라는 게 호락호락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잘못 주물럭거리다가는 한쪽이 부풀어 터져 파탄을 내고 만다. 우리는 동구에서 그같은 예를 보았으며 또 남미에서도 보았다. 경제는 그만큼 예민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사명감」에 넘치는 정치가와 관료들에 의해서 다루어져 왔다. 물론 성공한 것도 있었지만 위태위태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떤 정책은 마치 특공대의 작전처럼 비밀리에 전개되어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있다.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가면 이미 시도하려 했던 정책을 걷어가며 「상황끝」으로 마무리 짓는다.
82년 실명제파동에서 90년의 상황까지를 깊숙히 들여다 보면,정부의 돌출사고 과정에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는데 놀라게 된다. 실명제도의 취지나 그 목적에 이의를 제기 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8년전 5월에 장영자여인의 거액금액 사기사건으로 사회가 벌컥뒤집히자 두달후인 그해 7월,정부가 느닷없이 실명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해 야단이 났었다. 무기명ㆍ가명예금만 폐지시키면 비정상적으로 흘러다니는 금융자산이 노출될 것으로 생각했다. 더구나 그때는 이 제도의 실시전까지 실명화하는 출처불명의 자금은 모두 조세상 불문에 부치겠다는 특혜까지 주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발표에 겁먹은 거액의 예금이 은행에서 빠져나가고 주식시장이 몰락했으며,썰물처럼 탈출한 돈들은 80년대의 기록적인 부동산투기 붐을 조성하는 데 공헌했다.
당시 실명제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몇몇 관료들에 의해서 전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관련 실무부서 인사들과 깊숙히 논의된 적도 없으며,실물경제가 어떻게 찌들어 갈 것인지 예상조차 못했다.
이 제도는 그저 「가진 자」들만 신경써야 할 문제로 여겨졌다. 그와같은 중대한 조치들은 「민주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적인 조치로 사회적 부조리를 일시에 뿌리 뽑겠다는,사명감 높은 관료들의 구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제3자의 견해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토의과정이 완전 배제되는 정책스타일이 5공의 특색이었다. 정부의 체면이 형편없이 구겨진 것도 거기서 얻어진 결과다. 지하경제가 근절될 때까지는 예외나 수정이 있을 수 없다던 실명제가,실시유보로 역전드라마를 낳게 된 것은 발표 시점에서 겨우 3개월도 채 못지나서였다.
「오늘의 경제상황이 크게 변동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서 당시 민정당은 실시시기를 못박지 않는 실명제관련법율을 제정했다. 그걸로 대국민 신뢰도는 가까스로 유지했다고 자위했다. 그때는 야당인 국민당이 서민들의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실명제의 전면 보류를 주장했었다.
83년이후 실명제는 사실상 모두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다가 6공이 출범하면서 다시 되살아났다. 6.29선언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경제부문에서 뭔가 내놓을 게 없을까」하고 궁리하던 참모들이 노대통령에게 불쑥 내민 게 91년 실명제실시 방안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관련정책부서 전문가들의 토의가 있었다는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관리는 6공정책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엉겁결에 집어넣은 것이 실명제였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실명제 실시 유보결정은 82년 상황의 재판이다.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 드라마가 되풀이될 수 있는가 신기할 따름이다.
82년 실명정책에 관계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야에 있지만 상당수의 경제관료와 정치인들은 아직 그대로 있다. 그때 그들이 쌓았던 경험은 왜 활용되지 않았는가. 실명제 실시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는만큼 보다 활발한 정책토론을 통해 속알맹이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진작 벌어졌어야 했다.
그같은 절차가 생략됨으로써 국가경제가 적지않은 비용을 지불했다. 며칠 사이에 정책이 엎어졌다 뒤집어져 어안이 벙벙하다. 이쪽저쪽으로 빠져나간 돈들이 제자리를 잡는데 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제는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밀실경제정책은 경계되어야 한다.
위험도가 너무 높다. 「국민」 또는 「서민」을 담보로 하는 충격적인 정책은 더 이상 현실성을 갖지 못한다.
지난 77년 공화당은 가장 이상적인 세제라며 부가가치세를 벼락같이 도입했다.
이 제도도 밀실에서 만들어졌다. 마치 특공대의 작전회의처럼 진행되었다. 부가세야말로 한국의 실정에 꼭 맞으며 재정도 튼튼해지고 서민층의 부담은 가벼워질 것이라고 했다. 이 제도에 매달린 작업팀은 당시 박정희대통령에게 부가세의 좋은 점만을 보고했다.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부가세로 공화당은 78년 총선에서 패배를 맛보았다.
통치의 핵은 경제다. 탁월한 정치가가 나타나 아무리 멋있는 이념을 내세워도 경제가 삐거덕거리면 체제를 위협한다. 82년에는 77년 부가세의 교훈을 잊었다. 그리고 금년에는 다시 82년으로 되돌아갔다.
여론의 통풍이 되지않은,토의ㆍ토론을 거치지 않은 정책이 빚어내는 결과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어느쪽이 정책결정에서 시행착오를 많이 줄여 나가느냐 하는 데 있다.
경제문제는 특공대 투입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정책결정과정을 민주화 했더라면 실명제는 이처럼 요란한 소동을 피우지 않은 채 실시될 수 있는 길이 마련됐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