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개도국엔 차관 못 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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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폴 울포위츠(62.사진)가 이끄는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차관 제공을 중단하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울포위츠 총재가 개도국의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차관 제공 중단을 결정했지만 내부에선 "빈곤국 국민에 대한 '집단적 징벌은 안 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울포위츠의 '반부패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난해 말 인도와 약속했던 8억 달러 차관 제공을 보류했다. 이어 올해에는 케냐.콩고.차드.에티오피아.방글라데시 등에 대한 차관 계약을 줄줄이 철회하거나 보류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그는 "세계은행은 빈곤국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일자리 창출하는 일을 도울 것"이라며 "지원금이 부패한 권력층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예로 인도네시아의 경우 1990년대 지원받은 돈의 10~25%가량이 부패한 관리들에게 들어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과 빈곤국 개발 관계자들은 "부패와의 전쟁도 중요하지만 세계은행의 원조는 수억 명에 이르는 빈곤국 국민의 삶과 직결돼 있다"며 울포위츠의 접근은 특효약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후진국의 빈곤 문제는 정권의 무능과 부패에 기인하는 것인데 부패를 문제 삼으면 지원할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울포위츠에 대한 비판은 그의 전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국방부 부장관을 지냈다는 점에서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울포위츠 비판론자들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겠다는 신념을 추진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생각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반체제 인사 등으로부터 입수한 편협된 정보를 토대로 특정국의 부패 여부를 판단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며 "울포위츠가 자의적으로 부패 여부를 결정하는 등 세계은행 집행이사회와 충분한 협의도 하지 않아 불만이 크다"고 지적했다. 집행이사회는 울포위츠의 독단을 막기 위해 부패 정권 여부는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19일부터 이틀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회의에서는 울포위츠 총재의 '반부패 가이드라인'이 의제에 올라 있어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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