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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과거사위 초라한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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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종수 한성대 교수)가 14일 오후 2시 경찰청 브리핑실에서 '보도연맹원 학살의혹 사건'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사건' '1946년 대구 10.1 사건'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지난해 5월부터 4억7700만원의 예산과 16명의 조사 인력을 투입해 이 세 사건을 조사해 왔다. 현대사 논란의 핵심적 사안이라 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이날 이종수 위원장이 발표한 결론은 '상식선'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상반된 주장을 절충하는 데 그쳤다.

발표문에 따르면 남민전은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북한을 찬양한 반국가단체였지만 북한과의 연계활동이 미수에 그쳤기 때문에 '간첩단'으로 발표한 것은 성급했다는 식이다.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용공조작설'이 맞다는 건지, 틀리다는 건지 애매하다. 한국전쟁 때 벌어진 보도연맹원 학살 의혹에 대해선 "희생자 상당수는 좌익활동을 했으나 전향한 자들이고 좌익활동을 하지 않은 선량한 피해자도 일부 포함됐다"는 판단에 머물렀다.

46년 10.1 사건의 경우도 당시 희생자는 미군정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관을 포함해 518명, 다른 집계에 따르면 398명으로 나와 있으나 정확한 수는 파악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날 발표는 이미 알려진 사실을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당초 올 2월로 예정된 발표를 반년 넘게 늦추면서까지 조사를 벌인 것에 비하면 이번에 내 놓은 결과물이 너무 초라했다.

과거사위의 고심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91년에 있었던 김기설씨 유서 대필사건도 자료 부족으로 결론을 못 내렸는데 50~60년 전 사건을 어떻게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과거사 규명은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정원.국방부 등 과거사 진상 규명 활동을 벌이는 타 부처도 속사정은 비슷하다. 청와대의 지침에 따라 기구는 만들었지만 막상 조사를 하자니 세월이 너무 지나 증거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리기 일쑤다.

이런 식이라면 현재의 진상 규명 활동이 훗날 또 다른 진상 규명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철재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