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시어머니표 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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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 될 분이 물으셨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두 해 거푸 큰언니와 작은언니를 출가시킨 우리집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시댁 사정은 또 그 반대였다. 신랑 될 사람은 석 달만 있으면 서른셋인 데다, 칠순을 훌쩍 넘긴 시어머님은 막내 아들 장가 가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 하루가 아깝다며 성화셨다.

"혼수며 예단이 지금 처지로는 어려워요. 일 년만 더 직장을 다니면…." 그 뒤 몇 분은 내겐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침묵을 깨고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일 년 더 벌어 얼마나 잘해오겠다고…. 그냥 와라! 아들 넷 장가 보내면서 장롱 갖고 시집온 며느리 없었다."

어머님의 그 한마디로 결혼은 3개월 뒤인 1994년 12월 11일로 정해졌다. 털어도 먼지 안 날 형편임에도 친정 엄마는 가구 몇 가지와 시어머니 두루마기감을 예단으로 준비해 주셨다. 엄마는 "이제 며느리 보는 것도 마지막인 노인에게 이러는 게 아닌데…" 하시며 결혼식을 앞둔 내내 훌쩍이셨다.

그 외에 정말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숟가락 젓가락도 따로 안 샀다. 살림에 필요한 모든 것은 둘째형님과 어머님이 세심히 준비하셨다. 주방용품.욕실용품까지 빠뜨린 것이 없었다. 형님은 아껴두었던 도자기그릇 세트까지 보태셨고, 신부 측 음식마저 손수 맡아 주셨다. 친정 아버지는 아직도 결혼식 날 시어머님께서 직접 빚어 내놓으셨던 동동주 맛을 잊지 못한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내게 시댁 어른들은 줄줄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몇 개월이 지나서야 나는 형님이 나 대신 이불 한 채씩을 돌린 걸 알았다. 나는 너무 고맙고 미안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 같았던 시어머니는 3년 전에, 어머니 같았던 형님은 지난해 먼 하늘로 가셨다. 지금도 우리집 냉장고에는 어머니와 형님께서 마지막으로 함께 담근 고추장이 남아 있다. 나는 그것을 가슴이 아려 감히 먹지 못한다. 한 움큼 떠먹고 나면 나를 향했던 두 분의 사랑마저 사라질 것 같아서다. 비록 이가 빠졌지만 두 어른이 장만해 주신 접시를 버리지 못하고, 김치냉장고가 버젓이 있지만 27종의 스테인레스 김치통 또한 버릴 수 없다.

결혼 13년. 집도 바꾸고 차도 바꿨지만 나는 여전히 두 어른이 직접 장만해 주신 유행 지난 혼수들을 보듬고 산다.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정겹고 따스했던 두 분의 흔적을 찾기라도 하듯.

김정희 (38.주부.경기도 평택시 현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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