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장엔 전작권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도널드 럼즈펠드(얼굴) 미 국방장관이 배석한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수차례 독대해 "한국에 전작권을 빨리 넘겨주는 게 좋다"며 조기이양을 주도한 인물이다. 한국이 2012년 전작권 이양을 희망함에도 그는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2009년에 주겠다"고 했다. 전작권 문제에 관한 한 럼즈펠드 장관은 주연 같은 조연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당장에라도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만큼 회담장에서 노 대통령과 럼즈펠드 장관이 특별한 의견 충돌을 일으킬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작권 문제의 이면(裏面)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펜타곤(미 국방부) 사정에 밝은 워싱턴의 소식통은 12일 "전작권 이양과 관련해 노 대통령과 럼즈펠드의 입장이 언뜻 같아 보이는 건 역설적으로 두 사람의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3년 5월 14일의 일화를 들려줬다. 이날 럼즈펠드 장관은 미국을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의 숙소를 찾았다.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청와대는 백악관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주한미군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배치하는 걸 유보하자고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럼즈펠드 장관은 노 대통령을 만나 "곤란하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미 2사단의 후방 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럼즈펠드 장관은 "미군의 병력 이동은 미국이 판단할 사안이므로 한국이 왈가왈부할 게 못 된다"고 반박했다. 정상회담 결과를 담은 성명에는 "미군 재배치는 신중히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미 2사단은 나중에 결국 이동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럼즈펠드는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전작권 문제도 이런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고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재단 연구원 등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전작권 조기 이양은 전 세계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바꾼다는 전략과 부합한다는 게 럼즈펠드의 생각이다. "마침 노 대통령도 전작권 환수를 '자주국방의 꽃'이라고 했으니 럼즈펠드로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게 데릭 미첼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의 분석이다.
워싱턴의 국방 관련 싱크탱크의 한 관계자는 "럼즈펠드 장관은 노 대통령을 아주 비판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그는 ▶노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인상을 주며▶한국이 늘 북한을 감싸기 때문에 미 행정부로선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른 소식통은 "노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3년 2월 13일 럼즈펠드 장관이 의회에서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방침을 밝힌 건 당시 노 대통령 측에 '반미 좀 하면 어때'라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라며 "두 사람은 처음부터 어긋났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라크 상황이 악화하면서 힘이 좀 빠졌지만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