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부시 뒤의 럼즈펠드 '노의 코드' 와 다른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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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0시(현지시간 14일 오전 11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긴박감이 감돌고 있다. 이번 회담이 북한 핵.미사일, 대북 경제제재 문제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다. 여기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문제가 회담의 관심사로 부상하면서 한.미 양측 사이엔 미묘한 긴장감도 흐르고 있다.

회담장엔 전작권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도널드 럼즈펠드(얼굴) 미 국방장관이 배석한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수차례 독대해 "한국에 전작권을 빨리 넘겨주는 게 좋다"며 조기이양을 주도한 인물이다. 한국이 2012년 전작권 이양을 희망함에도 그는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2009년에 주겠다"고 했다. 전작권 문제에 관한 한 럼즈펠드 장관은 주연 같은 조연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당장에라도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만큼 회담장에서 노 대통령과 럼즈펠드 장관이 특별한 의견 충돌을 일으킬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작권 문제의 이면(裏面)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펜타곤(미 국방부) 사정에 밝은 워싱턴의 소식통은 12일 "전작권 이양과 관련해 노 대통령과 럼즈펠드의 입장이 언뜻 같아 보이는 건 역설적으로 두 사람의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3년 5월 14일의 일화를 들려줬다. 이날 럼즈펠드 장관은 미국을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의 숙소를 찾았다.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청와대는 백악관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주한미군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배치하는 걸 유보하자고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럼즈펠드 장관은 노 대통령을 만나 "곤란하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미 2사단의 후방 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럼즈펠드 장관은 "미군의 병력 이동은 미국이 판단할 사안이므로 한국이 왈가왈부할 게 못 된다"고 반박했다. 정상회담 결과를 담은 성명에는 "미군 재배치는 신중히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미 2사단은 나중에 결국 이동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럼즈펠드는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전작권 문제도 이런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고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재단 연구원 등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전작권 조기 이양은 전 세계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바꾼다는 전략과 부합한다는 게 럼즈펠드의 생각이다. "마침 노 대통령도 전작권 환수를 '자주국방의 꽃'이라고 했으니 럼즈펠드로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게 데릭 미첼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의 분석이다.

워싱턴의 국방 관련 싱크탱크의 한 관계자는 "럼즈펠드 장관은 노 대통령을 아주 비판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그는 ▶노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인상을 주며▶한국이 늘 북한을 감싸기 때문에 미 행정부로선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른 소식통은 "노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3년 2월 13일 럼즈펠드 장관이 의회에서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방침을 밝힌 건 당시 노 대통령 측에 '반미 좀 하면 어때'라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라며 "두 사람은 처음부터 어긋났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라크 상황이 악화하면서 힘이 좀 빠졌지만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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