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어야 한다(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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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우리 자동차」(합승),「들임표」(입장권),「태움곳」(배급소),「신세문의」(인생상담)는 아직 낯선 말이다. 그러나 튀김,차림표,셋방,도시락,가락국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은 우리의 일상언어가 되었다. 모두 외솔이 고집해 만든 말이다. 「외솔」이라는 아호는 성삼문의 시조에서 따온 것이다. 최현배선생 자신도 그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 『이몸이 죽어 죽어…』로 시작되는 그 시조속엔 낙락장송이니,독야청청이라는 구절이 있다. 바로 그 대목을 아호로 삼은 것이다.
그의 생애는 정말 아호 그대로다. 누가 뭐래도 그는 한글에 살고 한글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에겐 학문적인 위기와 도전이 적지않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나라의 성쇠는 언어의 성쇠에 있고,나라의 있고 없음도 나랏말의 있고 없음에 달려 있다고 그는 믿었다.
일제의 숨막히는 질곡속에서도 그는 우리말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끝까지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경도대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그는 『조선민족 갱생의 도』라는 저작을 내놓았다. 『살기는 무엇을 위해 살며,공부는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가.』 이 책에서 외솔이 자문한 말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할 때의 얘기다. 거친 발길에 채어 어쩔수없이 뒤로 넘어지면 그는 반드시 다시 일어나 스스로 쓰러지곤 했다. 일본의 발길에 채어 거꾸러졌다는 소리는 결코 듣고 싶지 않았다.
한글만 쓰기,우리말본(문법)에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양보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 때문에 그의 주장은 오히려 설득력이 덜한 경우도 있었다. 외솔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한쪽으로 많이 굽은 나무를 바르키는 방법은 그 반대쪽으로 1백80도 가깝도록 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아래서 병든 우리말을 고치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엔 옳은 생각,옳은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옳은 고집과 자기철학을 가진 사람은 적다. 외솔의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어야 사람이다.』
모두가 자기를 잃고 팔랑거리는 세태에 외솔의 20주기를 맞으며 새삼 그를 다시 우러러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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