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떼죽음 '성수대교 붕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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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이날 아침 우리 국민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지금도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전날까지 멀쩡하던 한강의 11번째 다리인 성수대교는 이날 폭격을 맞은 듯 두동강나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버스와 승용차를 타고 출근을 서두르던 시민들은 비명도 지를새 없이 삽시간에 강물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32명이 사망했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는 아침 7시 40분경에 발생했다. 성수대교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 상판 50미터가 그대로 물속으로 처박힌 것이다.

"붕괴된 상판은 물속에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채 강물위에 비스듬히 떠있고, 이 위에는 도봉구번동에서 서울대공원으로 운행중이던 16번 시내버스가 휴지처럼 구겨져 뒤집히고 봉고차량과 프라이드승용차.캐피탈 승용차등이 부서진채 있다. 중앙일보 94년 10월 21일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서울시장이 교체되고, 건설사의 간부들이 경질되고, 희생자에 대해 총 72억원의 보상비가 지급되었지만 떠나간 희생자들과 그날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갈 유가족들이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시공사인 동아건설의 부실공사로 판명된 이날 사고는 '빨리빨리' 만 외치던 우리의 건설문화와 안전불감증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대형사고들은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나라 국민들은 안전에 대해서 좀 별난 무의식의 유전자가 대물림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참담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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