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사 분란보다는 차라리 3년 연기가 차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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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사·정이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3년 연기를 골자로 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에 합의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 두 가지는 1997년, 2002년에 이어 세 번째 연기됐다. 그러나 여건이 성숙하지 않아 이 문제로 노사가 분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었다면 차라리 연기한 게 잘된 일이다.

복수노조는 경영계에,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노동계에 각각 부담스러운 사안이라 과거처럼 양측이 하나씩 주고받았고 정부는 못 이기는 척 따랐다. 그런데도 "이번 대타협은 대결적 노사관계가 협력적 관계로 전환하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청와대가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협상 창구 단일화 등의 대책이 없고 노사가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두 가지 제도가 시행되면 생산 현장에 적잖은 혼란이 생길 게 예상됐는데, 이런 점에서 3년 유예가 한시름 돌릴 수 있게 해줬다고 볼 수 있다.

또 이번 로드맵에서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했고 경영상 해고 협의기간을 단축하되 해고자 재고용 의무를 부과한 점 등은 국제 기준에 근접한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노동부의 무원칙한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노동계에 질질 끌려다녔고 노사 합의안이 나오자 수차례 오락가락했다. 도대체 지난 5년간 뭘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노·사·정은 3년을 벌었다고 해서 또 허송세월해서는 안 된다. 미리 머리를 맞대 최적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민주노총도 속으로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유예를 반기면서도 복수노조 허용을 외치며 파업 운운해서는 안 된다.